▲도계 아이들 손바닥. 다른 친구들 사정을 자기 손바닥 보듯 알고 있다.
이준수
도계에는 사람을 흥분시키는 사건이 드물다. 항상 보는 이웃들, 5일장, 탄가루가 섞여 검게 보이는 산, 어느 곳에 시선을 두어도 자극적이지 않다. 매달 갱신되는 멀티플렉스 영화 포스터, 방수방진을 강조하는 스마트폰 광고, 공사 중인 빌딩의 소음으로 대변되는 도시와는 사뭇 다르다. 시골생활의 담백함은 사람들에게 여유를 선물한다. 동네에 아기가 태어나면 함께 축하해주고, 등굣길에 아는 애가 걸어가고 있으면 같이 차에 태워오는 일이 흔하다.
정다운 시골의 모습은 낭만적이다. 그러나 도시에 사는 사람이 도계 주민처럼 행동하다가는 과민증에 걸릴 위험이 있다. 시시각각 바뀌는 주변 상황에 일일이 반응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24시간 동안 스쳐간 인물들을 모두 기억할 수 없고, 직접 대면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속사정을 고려하며 대하기 힘들다. 복잡한 환경으로부터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도시인들은 타인에게 무관심하며, 감정 소모를 최소화한다. 냉정하고 사무적인 인간관계는 사람들의 잘못이 아니라 도시 구조에 기인한다.
사채 빚에 시달리다 모녀가 스스로 목숨을 끊고, 여자친구의 헤어지자는 말에 분노한 남자친구가 애인을 살해하고, 퇴근길 도로에서 교통사고가 발생해도 나와 관련되지 않으면 신경 쓰지 않는다. 언뜻 보면 자유롭고 부담감이 없지만 한편으로 고독하고 쓸쓸하다. 조금이라도 경쟁력을 키워 남들보다 앞서 나가길 강요받는 사회에서 남에게 마음 쏟는 일은 사치스럽게 여겨지기도 한다. 세월호도 그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