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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산책
시를 쓰는 권혁웅 님이 쓴 <외롭지 않은 말>(마음산책, 2016)이라는 책을 읽습니다. 이 책에는 '시인의 일상어사전'이라는 이름이 더 붙습니다. 권혁웅 시인 나름대로 '한국 사회 유행말'을 풀이해서 들려주는 이야기꾸러미예요.
이를테면 '교회 오빠'나 '친구 누나'나 '귀요미'나 '꿀벅지'나 '넘사벽'이나 '먹방'이나 '모태솔로' 같은 말을 두고서 사회에서 주고받는 생각을 슬쩍 짚다가는 시인 나름대로 생각한 이야기를 곁들입니다.
'네가 처음이야'나 '나 요즘 살쪘지'나 '너 몇 학번이야'나 '늙으면 죽어야지'나 '방법이 없네'나 '언제 밥 한번 먹자' 같은 말이 겉뜻하고 속뜻이 얼마나 벌어지는가 하는 대목을 짓궂거나 재미나거나 의뭉스럽게 건드립니다.
'여자가 나 잡아봐라, 하고 외친다고 해서 남자가 아무 여자나 추격하는 것은 아니다. 여자가 빛일 때에만, 그러니까 빛의 속도로 달아날 때에만 남자는 슬로모션으로 그녀를 따르기 시작한다.' (50쪽)'안타깝게도 '높임'이란 '낮춤'과 한 짝이어서 우리말에는 존대만큼이나 하대가 발달했다. 신분제 사회의 전형적인 특징이다… 말싸움의 결론이 늘 "당신 몇 살이야?"인 것도 그런 이유에서이며, 이것이 학벌과 결합해서 나온 말이 "너 몇 학번이야?"다. "학번이 깡패다"라는 단정과 짝을 이룬 말이지만 실은 이상한 질문이다. 몇 학번인지도 모르면서 왜 처음부터 반말일까?' (62, 63쪽)
여러 가지 이야기 가운데 '너 몇 학번이야' 같은 말을 다루는 대목에서 쓰게 웃습니다. 권혁웅 님 말마따나 한국 사회는 아직 신분이나 계급으로 갈린 얼거리입니다. 그래서 높임말 못지않게 낮춤말이 발돋움했어요.
이를테면 한자말 '변'은 높임말로 여기고 '똥'은 낮춤말로 여기지요. 한자말 '식사'도 높임말로 여기면서 '밥'은 낮춤말이라도 되는 듯이 여겨요. 회사나 공공기관 같은 곳에서 과장이나 부장이나 사장쯤 되는 분들은 '밥'을 먹지 않아요. 언제나 '식사'만 하시지요.
그나저나 나이가 몇 살인지도, 학번이 얼마인지도 모르면서 "왜 처음부터 반말"로 "너 몇 학번이야?" 하고 묻는 사람이 많을까요? 왜 나이도 아닌 학벌까지 앞세우면서 목소리를 높이려고 할까요? 그나마 학번이라도 있으면 한숨을 돌리고, 학번조차 없으면 '대학교도 못 나온 놈'이라는 소리를 들어야 할는지 모릅니다.
'오, 각선미 죽이는데? 가슴이 좀 작군. 입술이 섹시해. 남자들은 늘 이렇게 여성들을 대상화해 왔다. 그런데 그 각선미 죽이는 아가씨가 고개를 돌려 말을 걸었던 거다. 난 루저라고.' (96쪽)''요즘은 자꾸 빨간 게 좋아'서, 2016년 현재 여당마저도 빨간 옷을 입고 다닌다. 하지만 여전히 어떤 색맹들께서는 자기 마음에 들지 않으면 이렇게 말한다. 종북, 종북, 종북. 정신의 딸꾹질이 따로 있는 게 아니다.' (131∼132쪽)재미나면서도 의뭉스럽게 이야기를 풀어내는 권혁웅 님은 2016년 오늘날 '빨갛게 물든 옷'을 입고서 허리를 깊게 숙여서 절을 하는 여당 정치꾼 이야기를 살며시 섞습니다. 왜 한입으로는 '빨갱이'나 '종북'을 외치면서, 왜 한손에는 '빨갱이 옷'을 걸치고 '빨갱이 깃발'을 펄럭일까요? 참말로 "정신의 딸꾹질"이라고 할 만합니다.
그런데 이런 딸꾹질은 어쩔 수 없는 우리 사회 모습일는지 몰라요. '차카게 살자(착하게 살자)' 같은 말이라든지 '바르게 살기' 같은 말은 착함이나 바름하고는 동떨어진 자리에서 흔히 쓰이거든요. 착하게 살기로 하지 않으면서 '착함'을 외치는 사회요, 바르게 살지 않으면서 '바름'을 사람들한테 윽박지른 정치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