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에서 자라서 퍼지는 흰민들레 씨앗. 흰민들레 씨앗이 퍼져서 이 민들레 잎사귀를 두고두고 나물로 먹기를 바라면서 돌봐요.
최종규
큰아이랑 둘이서 뒤꼍에서 흙을 만지니, 이제 작은아이도 어슬렁어슬렁 달라붙습니다. 함께 놀 '두 사람'이 안 보이기 때문이지요. 작은아이도 호미를 챙겨서 '아직 갈지 않은 자리', 그러니까 며칠 뒤에 갈 자리를 콕콕 쫍니다.
슬슬 쉬엄쉬엄 땅을 갈아 돌을 고른 뒤에 손바닥으로 반반하게 자리를 다집니다. 이제 씨앗을 심을 때입니다. 나는 손가락으로 콕콕 구멍을 내고, 두 아이는 저마다 씨앗을 손에 쥐어 한 톨씩 넣습니다. 우리 꿈을 담아서 씨앗을 심습니다. 우리 노래를 부르면서 씨앗을 심습니다. 우리 이야기를 얹어서 씨앗을 심습니다.
씨앗을 다 심은 뒤에는 큰아이가 물을 길어서 골고루 뿌립니다. 나는 밭에서 나온 쓰레기를 거두어서 한쪽에 모읍니다. 연장에 묻은 흙을 물로 씻어서 한쪽에 놓습니다. 따스한 볕이 골고루 들면서 나무한테도 풀한테도 땅한테도, 또 마당에 넌 빨래한테도 기쁜 기운을 나누어 준다고 느낍니다.
다국적 씨앗 회사들은 씨앗을 서로 나누는 농부들을 골칫거리로 생각했어요. 씨앗을 보관하고 나누는 것이 원래 농부의 일이고 권리인데 말이에요. 씨앗 회사들은 농부들에게 씨앗을 팔 방법을 생각해 냈어요. 특허 제도를 도입하고 씨앗이 특허를 낸 사람의 지적 재산이 되도록 해서 농부들이 서로 씨앗을 교환하지 못하도록 금지하자는 것이었어요. (50쪽)어린이 인문책 <씨앗이 있어야 우리가 살아요>는 씨앗하고 얽힌 수수께끼를 차근차근 풀어 줍니다. 옛날부터 어느 곳에서나 사람들이 손수 심고 가꾸면서 아낀 씨앗 이야기를 들려주고, 오늘날에는 이 씨앗을 다국적기업에서 돈벌이를 앞세우면서 독점과 특허와 유전자조작을 하는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씨앗을 심거나 나누는 살림이 무엇인가 하는 이야기를 들려주고, 사람들이 스스로 씨앗을 아끼면서 심고 갈무리하는 곳에서는 '가난'이 퍼지지 못한다는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그러고 보니 참으로 그렇구나 싶어요. 사람들이 시골에서 흙을 일구어서 밥이랑 옷이랑 집을 손수 얻으면 언제나 '자급자족'이에요. 자급자족을 하는 곳에서는 '경제성장'이나 '경제발전'은 딱히 없을 만해요.
상품으로 내다 팔려고 하는 땅짓기가 아니라, 한집하고 한마을이 조용히 오순도순 사이좋게 어우러지려고 하는 땅짓기요 땅살림이기 때문입니다. 반다나 시바 님하고 마리나 모르푸르고 님이 함께 들려주려고 하는 이야기는 바로 '세계경제'가 아닌 '마을살림·집살림'을 스스로 즐거우면서 재미나고 알차며 아름답게 가꾸자고 하는 이야기라고 느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