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 50주년을 맞은 <창작과비평>. 신경숙 표절사태에 관한 '창비'의 태도는 많은 이들의 지탄을 받았다.
창비
한국문학의 위기는 좁혀 말하면 계간지와 월간지 등을 망라한 한국 문예지의 위기와 다름없다. <창작과비평> <문학동네> <문학과사회>등으로 대표되는 문예지는 한국문단에서 어떤 의미로 자리했던가.
이들 문예지는 각각 개별 잡지의 성격에 부합하는 시인과 소설가를 선별해내고, 문단이란 토양 안에서 그들을 키우고, 각종 문학상으로 격려하고, 동일하고 유사한 작업을 하는 작가들의 동아리를 만들어 그 모임 안에서 서로를 격려하며 채찍질하고, 선후배 문인들이 인간적 교류를 할 수 있는 사교의 장 역할까지 해왔다. 문단에 끼친 긍정적 영향력이 적지 않았다. 그러나 잘라 말하자면 이건 기억 저편 '옛날이야기'라는 게 필자의 바꿀 수 없는 생각이다.
지난해 문학계의 뜨거운 감자였던 '신경숙 표절 사태' 이후 언필칭 '메이저 양대 문예지'로 불리는 <창작과비평>과 <문학동네>를 향해 쏟아진 비평가들의 비평과 수많은 독자의 질책은 근거 없는 쓴소리만으로 치부하기 힘들다. 그간 '권력'을 독점하고, 그 독점적 공간 속에서 잡지에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소수의 (성골)문학평론가들이 몇몇의 (잘 팔리는) 작가와 손발을 맞춰 자신들(문학평론가)의 자장(磁場) 안에 있는 문예지를 통해 이들(작가)을 띄워주고 키워주기를 거듭해 왔다"는 비판은 이미 오래전부터 있었다.
지난번 '신경숙 표절 사태'는 이것이 공론화되고, 표면화된 것일 뿐, 거기서 오간 이야기는 한국문학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이들이라면 벌써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어온 것들이다. '문학상업주의' '문단권력' '주례사비평' '창비(창작과비평) 혹은, 문동(문학동네) 진영 평론가와 작가'… 이러한 '비문학적'이고 듣기 불편한 단어들이 무시로 오간 '신경숙 사태'라는 화마는 어째서 초기에 진화되지 못하고 마른 나무 가득한 겨울산에 번지는 불처럼 삽시간에 확산됐을까.
그 배경에는 소설가 이응준이 표절했다고 지목한 미시마 유키오의 소설 <우국>을 두고 "읽은 기억은 나지 않지만, 이제는 나도 내 기억을 믿을 수 없는 상황"(<경향신문>인터뷰)이라고 말한 신경숙의 모호한 해명보다 더 실망스러웠던 <창작과비평>의 태도에 있었다.
표절 사태에 관한 <창비>와 <문동>의 안일한 현실 인식<창작과비평>은 신경숙의 작품을 다수 수록함으로써 작가에게 문학적 권위와 함께 독자들의 관심을 선물하고, 신씨의 소설을 출판해 적지 않은 금전적 이익을 얻어낸 잡지다. 그럼에도, 아래와 같은 해명은 상식선에서 제기된 '표절'이라는 문제의 본질을 불분명한 논리로 회피하고, 세간의 시각에서 '창비 진영 작가'로 분류됐던 신경숙의 입장만을 시종 변호하는 것으로 읽혀질 여지가 충분해 여론의 매운 질타를 받았다.
"언론과 독자분들께 <전설>과 <우국> 두 작품을 다 읽고 판단해주시기를 당부드린다.(중략) 사실 두 작품의 유사성을 비교하기가 아주 어렵다. 유사한 점이라곤 신혼부부가 등장한다는 정도이다. 또한 선남선녀의 결혼과 신혼 때 벌어질 수 있는, 성애에 눈뜨는 장면 묘사는 일상적인 소재인 데다가 작품 전체를 좌우할 독창적인 묘사도 아니다(문장 자체나 앞뒤 맥락을 고려해 굳이 따진다면 오히려 신경숙 작가의 음악과 결부된 묘사가 더 비교 우위에 있다고 평가한다). 또한 인용 장면들은 두 작품 공히 전체에 차지하는 비중이 크지 않다. 따라서 해당 장면의 몇몇 문장에서 유사성이 있더라도 이를 근거로 표절 운운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후략)" - 2015년 6월 17일 '창비 문학출판부'가 배포한 보도자료 중에서. 표절문제를 제기한 신문과 방송사 기자들은 물론 평소 창비에서 출간된 책을 읽어온 독자들을 한 수 아래의 '학생'으로 보고 '지도하는' 듯한 어투를 담은 창비 문학출판부의 위 보도자료는 타오르던 논쟁에 다시 한 번 기름을 부은 격이었다.
인터넷공간에선 "다시는 창비의 책을 사보지 않겠다" "문학인 전체에 대한 모욕"이라는 등의 비난이 비등했고, 걷잡을 수 없이 번지는 불길에 놀란 창비는 부랴부랴 강일우 대표이사 명의로 '독자 여러분께 드리는 글'을 발표하며 진화에 나섰다. 그러나 대표이사의 '사과문'에도 '신경숙 표절 사태'를 보는 창비의 명확한 입장은 드러나지 않았고, 추후 재발방지 대책도 두루뭉술하게 표현돼 있을 뿐이었다.
'신경숙 표절 사태'와 관련 창비와 함께 또 다른 '문단권력'의 한 축으로 지목되며, 곤욕을 치른 문동의 사과와 대처는 구체성에서는 한 걸음 더 나아갔지만, 그렇다고 신경숙과 문동을 향해 있던 문학평론가와 독자들의 비판과 힐난을 온전히 잠재우지는 못했다. 이후 이 사태에 관한 책임을 지고 문동 강태형 대표와 1기 편집위원 6명이 퇴진한 것은 모두가 아는 주지의 사실이다.
"신경숙의 <전설>이 미시마 유키오의 <우국>의 표절작이라는 문제 제기는 15년 전 이미 한 차례 있었다. 비록 정문순 평론가의 글이 증거를 제시하지 않은 채 10여 개의 비슷하거나 거의 동일한 문구가 있다고만 단정하고 있어 당시의 감각으로는 설득력이 부족한 것처럼 보였다 해도, 한 번 제기된 문제를 소홀히 넘긴 것에 대해서 나를 비롯한 어떤 평론가도 그 책임에서 벗어날 수 없다.(중략) 문제제기를 진지하게 검토하지 못한 것이 문동 편집위원들에게는 뼈아픈 대목이다. 깊은 실망을 느꼈을 독자 여러분께 사과드린다. 나를 비롯해서 문학동네 편집위원들 가운데 어느 누구도 일련의 사태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중략)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신경숙 작가의 개인적인 잘못이 아니라 문학의 타락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문학의 타락에는 문동의 책임이 크다는 주장도 많았다. 이런 주장들에 응답해야만 한다.(후략)" - 편집위원 권희철이 쓴 <문학동네> 2015년 가을호 서문 중에서. 내·외부적 위기에 직면한 문단... 새로은 길은 없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