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동묘
여경수
만동묘 옆에는 1695년에 송시열을 배향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화양서원이 있다. 화양서원과 관련되어 내려오는 이야기가 있다. 흥선대원군 이하응이 대원군이 되기 전에 화양서원에 들렀다. 이하응은 화양서원의 문지기에게 봉변을 당했다. 분에 못이긴 이하응이 당시 노론의 핵심세력들에게 그 문지기의 처벌을 요구했다. 하지만 거절당했다.
훗날 권력자가 된 흥선대원군 1871년 서원철폐 개혁과정에서 화양서원 역시 훼철했다. 흥선대원군이 전국에 47개의 서원만 남겨 두고 화양서원을 비롯한 수많은 서원을 철폐한 이유는 나름 그 의미가 있다. 조선 후기에는 수많은 서원이 그 원래의 기능을 상실했다. 지방 곳곳에 있던 서원이 지역 유지들의 군역과 세금의 면탈에 이용되었다. 또한 서원이 배움이 전당이 아니라 일부 가문이나 정치적 노선을 중심으로 패거리 문화를 양산했기 때문이다.
화양계곡은 9가지의 계곡이 있다고 해서 화양구곡으로도 불린다. 이곳의 바위 재질은 화강암으로 오랜 세월 하천의 침식작용으로 바위가 만들어졌다. 우리는 화양1곡인 경천벽을 지나서 화양동탐방지원센터 앞에 있는 주차장에 주차를 했다. 제2곡은 운영담이다. 운영(雲影)은 구름의 그림자가 계곡에 비취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제3곡은 읍궁암이다. 읍(泣)을 운다는 의미이며, 궁(宮)을 궁궐을 의미한다. 송시열이 효종이 승하한 소식을 듣고 한양 궁궐을 향해서 바위 위에서 소리내어 울었다고 이름이 붙여졌다. 송시열은 효종의 스승이었다. 읍궁암 맞은편에 만동묘와 화양서원이 자리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