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겨울 용산참사 유족의 철거현장 천막농성용산유족이면서 서울 순화동 철거민이었던 유영숙 씨는 지난 1월까지 1년여 순화동 재개발 공사현장에서 천막농성을 진행했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작년 1월부터 인권의학연구소는 서울시와 용산참사진상규명위원회의 후원과 협조로 용산사건의 피해자들을 만나 이 분들의 인권상황 실태를 조사하고, 치유대책을 마련하기 위해 노력해왔습니다. 그리고 최근 이 사업의 1차 조사결과가 보고서 <2015년도 서울시 인권피해자 치유지원사업 최종보고서>로 제출되었습니다.
이번 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용산참사 피해자들은 가족이나 배우자의 사망, 4~5년의 장기 구금 생활, 구속 등 법적 처벌로 인한 피해 외에도 사건 이후 이혼 등 가족해체, 심각한 신체부상으로 인한 경제능력 상실, 여전히 남아 있는 자신들의 철거지역 문제의 미해결 등 다양한 고통을 겪고 있음이 확인되었습니다.
실태조사 응답자의 80%는 용산사건 이전부터 철거현장에서의 용역업체 직원들에 의한 폭언, 폭행을 직접 경험했고 1년 이상 생업을 중단하고 철거반대투쟁을 해오던 철거민들이 절반 이상이었습니다.
용산사건 진압과정에서 신체적 손상을 입은 사례가 53%, 사건 이후 신체적 피해 외 사회적 불이익, 고립과 소외를 경험한 응답자도 절반에 이르렀습니다. 피해자들은 '가족에 대한 망신과 모멸감', '소외감', '왠지 모를 불안, 초조, 창피, 불이익과 차별에 대한 두려움'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그로 인해 자신이 용산사건 피해자라는 것을 숨긴 경험이 있다는 응답자도 60%였습니다. 피해를 숨긴 이유도 '불이익과 차별이 걱정되어'라는 것이 가장 많았습니다.
용산사건 피해자들은 법적 처벌을 받은 이외에도 국가에 의한 감시 미행 도청, 언론의 왜곡 보도, 철거업체의 협박과 폭행 그리고 사회적 냉대와 외면으로 심각한 인권침해를 경험하고 있다고 토로했습니다.
이러한 1, 2차적인 피해는 현재 용산사건 피해자들의 심각한 정신심리적 위기로 나타나고 있었습니다.
용산사건 피해자들은 사건 이후 변화된 점으로 '성격이 난폭해졌다', '딸하고 사이가 낯설다', '배우자가 심리가 불안하고 우울증 치료받고 암이 발생했다', '모친도 스트레스로 간 치료를 받고 있다', '이혼 후 가족이 파괴되었다'고 호소하고 있으며 특히, 가족관계의 급격하고 불안정한 변화로 크게 고통 받고 있었습니다. 또한 '일상의 무력감', '출소 후 정신적 어려움', '용산참사에 대한 무관심', '남 앞에 나서지 못하고 주눅 든다'는 등 대인관계에서의 어려움도 호소하고 있었습니다.
이번 실태조사 응답자들의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PTSD) 진단검사 결과, 완전 PTSD 위험군으로 분류할 수 있는 피해자들이 전체 응답자의 86%였습니다. 응답자의 60%가 자살을 생각한 적이 있고, 실제 자살, 자해 경험이 있는 응답자도 20%에 달했습니다.
인권의학연구소의 2011년 조사결과, 고문피해자들의 약 76%가 PTSD 위험군에 해당되었다는 점을 고려할 때 용산사건 피해자들의 심리적 상황이 매우 우려할 수준이라는 점을 알 수 있습니다.
참사의 결과는 용산사건 참여 당사자뿐만 아니라 그 후대에까지 이어지고 있었습니다. 2009년 당시 농성 철거민들은 40대 전후였는데 대부분 10대 자녀들을 두고 있었습니다. 1년 가까운 장례농성투쟁과 그 후 계속된 구금생활 중 자녀들에 대한 충분한 관심과 보호가 부족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지금 대부분 건강하게 어려움을 극복해가고 있지만, 일부 유가족과 자녀들의 경우, 신체적 장애와 정서적인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아시다시피, 용산사건은 2009년 12월, 356일에 걸친 유족들과 시민들의 노력의 결과 시공사, 서울시 등과 피해지원 및 사태수습안에 합의한 바 있습니다. 당시 건설사와 합의한 피해 지원대책 역시 일부에게만 국한되었고 그마저 아직 미완으로 남아 있었습니다. 상도4동, 성남, 남양주, 신계동, 사당동 등 타 지역에서 지원투쟁 왔다가 용산 남일당에서 연행되어 구속되어 삶이 송두리째 어긋난 다수 피해자들은 최소한의 피해보상, 지원대책에서도 제외된 형편입니다.
당시 세부 합의 내용은 외부에 비공개되었습니다만, 합의결과에 대한 만족도는 대체로 불만족(13%), 아주 불만족(47%)이었고, 응답자 가운데 33%는 피해당사자 임에도 '합의내용조차 모른다'는 의견도 있었습니다.
2009년 12월 타결된 합의 내용의 이행에 대해서도 '이행되지 않았다' 등 부정적 평가가 대부분이었습니다. 현재 피해자들은 '국가의 사과와 배상, 명예회복 조치', '용산참사 특별법 등 입법조치', '진실규명과 추가 피해조사', '폭력진압 책임자 처벌' 등을 강하게 요구하고 있었습니다.
용산참사 당시부터 여러 기관, 단체와 시민들이 용산 참사 피해자, 가족에 대한 치유지원 노력을 해왔지만, 7년여 시간이 흐르면서 참사 사건은 시민들의 기억에서 조금씩 멀어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저희가 만나본 피해자, 유족들은 2009년 1월 20일, 남일당 건물의 참사현장에서 한걸음도 떼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참사 사건의 진상은 여전히 의문과 의혹에 싸여 있고, 참사를 일으킨 국가폭력의 책임자들은 잘못을 인정하고 반성하기보다 태연히 고개를 들고 처벌받지 않는 모순된 상황이 피해자와 유족들을 더욱 아프게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