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슬로의 욕구단계설. 한국은 반세기 동안 '하위단계'의 욕구를 해결하지 못했을 뿐 아니라, 점차 더 어렵게 만들고 있다. 정부가 국민들의 최저생계(생리 욕구) 보장을 '포퓰리즘'으로 거부하고, '안보 위협'을 과장하거나 부추겨 권력을 유지하려 할 때 왜 출산율(애정 욕구)이 추락하고 예술(자기실현 욕구)이 몰락하는지를 잘 보여준다.
강인규
보수 노인 단체들은 자주 '전쟁불사'를 외치곤 하는데, 이는 그들의 기본적 생리욕구가 충족되지 못했음을 말해준다. 같은 이유에서, '가진 것 많은' 사람들이 '전쟁불사'를 외치는 것은 진심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아무리 해외 재산이 많고 재빨리 외국으로 피신할 수단이 있다 하더라도, 국내 주식이 휴지가 되고 부동산이 잿더미가 되기를 원하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성적 욕구 불만? 정권 책임이다!보수정치세력은 '안보 위협'을 핑계로 국민들의 임금인상이나 복지에 대한 요구를 짓밟곤 한다. 이는 그들이 국가를 존속시키는 데 관심이 없음을 드러내는 것이다. 사람들은 기초생계가 보장이 안 되는 나라, 전쟁이 언제 터질지 모르는 나라에서는 아기를 낳지 않기 때문이다. 정부가 안보 위협을 과장할 때, 그들의 유일한 관심사는 권력 유지다.
앞의 영국 여론 조사에서 '공연'과 공동 2위를 차지한 '운동'은 한국에서 어떤 의미를 지닐까? 우리에게는 건강이나 즐거움을 위한 활동보다는 '몸 만들기'라는 또 다른 경쟁행위일 뿐이다. 공연? 우리는 세계 최장 노동에 시달리면서도 고용불안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최악이다. 이러니 공연을 감상할 여건도, 여유도, 기력도 없지만, 무엇보다 '취업률'을 이유로 예술대를 폐쇄하는 나라에서 무엇을 기대하는가?
'공연'으로 대표되는 예술 또는 창작활동은 매슬로의 '욕구단계설'의 가장 높은 지점에 위치한다. 이 단계에서 사람들은 자신이 지닌 잠재력을 확인하려 하고 그것을 최대한 확장하려고 한다. 사람들은 이 지점에서 비로소 꿈꾸기 시작하는 것이다.
제이티비씨(jtbc)는 올해 2월 말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했다. 고등학생들이 가장 선망하는 직업 1위는 '공무원'(22.6%)이었고, 2위는 '건물주와 임대업자'(16.1%)였다. 그 이유로 학생들은 '안정적'이고 '높은 소득이 보장되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중고등학생 10명 중 3명은 아예 '꿈이 없다'고 답했다. 앞의 설문조사는 '공무원'과 '건물주'를 말한 학생을 '꿈이 있는' 것으로 통계처리했지만, 사실은 모두가 꿈이 없는 셈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창조경제'를 내세웠지만, '창조'는 기본적인 '생리욕구'와 '안전욕구'를 만족시켜주는 사회에서나 가능하다. 생존에 목 맨 사람들은 실패할 가능성이 없는 안전한 선택만 하려들기 때문이다. '공무원'과 '건물주'로 가득찬 나라를 생각해 보라.
'투표 잘 해서 섹스하자'라는 구호연애에 실패하고 계신가? 꼭 개인 탓만은 아니다. 국가가 국민의 기본 생계를 책임지면 학벌, 재산 따위에 얽매이지 않고 매력과 인품만으로 상대를 고를 수 있게 된다. '먹고살기 위해' 원하지 않는 사람과 결합할 이유도 없어진다.
국민의 최저 생계가 보장되면 연애 가능한 상대가 대폭 늘어나고, 쌍방이 동등한 조건에서 교류할 수 있게 된다. '조건' 대신 '애정'으로 결합한 사람들이 더 많이 사랑하고, 더 많이 행복을 누리는 것은 당연하다. 제대로 된 정부를 세우면 연애 성공률뿐 아니라 연애의 질까지 높아지는 것이다.
그렇다면 '투표 잘 해서 섹스하자'라는 구호가 그다지 '과격한' 구호만은 아닐 것이다. 그뿐인가. 투표 잘 하면 우리도 운동을 즐길 수 있게 되고, 좋아하는 공연도 마음껏 볼 수 있게 된다. 더 중요한 것은, 이제까지 포기 해 온 '꿈꾸기'를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점이다.
'국민행복시대'는 대통령이 아닌 당신 손에 달려 있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댓글5
언론학 교수로, 미국 펜실베니아주립대(베런드칼리지)에서 뉴미디어 기술과 문화를 강의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 몰락사>, <망가뜨린 것 모른 척한 것 바꿔야 할 것>, <나는 스타벅스에서 불온한 상상을 한다>를 썼고, <미디어기호학>과 <소셜네트워크 어떻게 바라볼까?>를 한국어로 옮겼습니다. 여행자의 낯선 눈으로 일상을 바라보려고 노력합니다.
오마이뉴스 장지혜 기자 입니다. 세상의 바람에 흔들리기보다는 세상으로 바람을 날려보내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기사를 스크랩했습니다.
스크랩 페이지로 이동 하시겠습니까?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