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톤보리가와.해가 지자 화려한 네온사인과 예쁜 간판들이 여행자들을 유혹한다.
노시경
일본을 여행할 때마다 느껴지는 점은 일본의 여러 여행지가 우리나라에 비해 참으로 조용하다는 점이다. 시끌벅적해야 할 축제 기간에도 참가자들의 절제된 동작 속에 행사가 진행되는 경우를 많이 보았다. 그런데 일본 내에서도 유독 사람들의 모임이 번잡하고, 도시의 문화가 일본경제의 침체에서도 벗어나 보이는 곳이 있다. 그곳은 바로 오사카(大阪). 오사카를 여행하다보면 일본의 다른 지역을 여행할 때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를 느낄 때가 많다.
'먹다가 망한다'는 도시, 일본의 부엌이라는 오사카. 이 오사카에서도 먹거리가 가장 밀집한 곳이 도톤보리(道頓堀)다. 도톤보리는 낮에는 조용하다가도 밤이 되면 마치 다른 도시가 된 듯이 변색을 한다. 수많은 네온사인 속에서 젊은 남녀가 넘쳐나고 있다.
주변은 고급 상점가로 둘러싸여 있지만 도톤보리는 서민적인 분위기가 물씬 나는 정겨운 곳이다. 나는 오사카의 야경과 사람들을 구경하기 위해 해가 진 도톤보리 안으로 들어섰다. 나는 여러 이름난 먹거리를 빠트리지 않고 조금씩 먹어보기로 했다. 도톤보리의 수많은 맛집 정보를 알아보고 길을 나섰지만 어디를 먼저 가야할지 정해야 했다. 어느 맛집을 갈지 정하지 않고 나오면 거리의 수많은 맛집과 먹거리 속에서 갈등이 생기기 때문이다.
'도톤보리 마라토너'가 두 손 번쩍 들고 있는 이유거리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여행 명소의 수많은 인파로 인해 여행의 느낌이 물씬 난다. 운하로 만들어진 도톤보리가와(道頓堀川)를 가로질러 난바(なんば)로 이어지는 에비스바시(戎橋) 위에는 여행자들로 인산인해였다. 운하 위의 화려한 네온사인이 켜지면서 도톤보리 주변은 아름답게 반짝거리고 있었다. 이 운하를 정비하기 위해 많은 비용과 시간을 투자했다고 하는데, 그 노력으로 인해 도톤보리가와 주변은 오사카의 관광 일번지가 되어 여행자들의 발길을 끌어들이고 있었다.
이 다리를 함께 건너던 친구가 이런 이야기를 해주었다.
"이 에비스바시 다리 위에서는 남자들이 처음 보는 여자들에게 데이트를 신청하는 전통이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어.""지금도 젊은 남녀의 눈빛들이 번쩍거리는 것 같지 않아?" 과연 수많은 젊은 남녀들이 다리 위에 걸터앉아 주변을 탐색 중이었다. 도톤보리가와 위의 휘황찬란한 네온사인 속에는 도톤보리에서 가장 유명한 마라토너가 있다. 이 마라토너는 현재 글리코 사의 상징일 뿐만 아니라 지금은 도톤보리의 스토리 있는 상징이 되어 있다.
"저 마라토너가 왜 그렇게 유명한 거야? 어떻게 보면 평범하기만 한데. 그리고 왜 손을 번쩍 들고 서 있지?""저 친구는 일본의 글리코(glico)라는 제과 회사에서 만든 마라토너야. 글리코 회사의 과자를 먹고 오사카 일대를 돌아서 도톤보리로 골인한다는 이야기를 담고 있지."
오랜만에 글리코 마라토너를 보니 내가 다시 오사카에 왔다는 생각이 든다. 보통 광고판은 수시로 바뀌는데 이렇게 오랫동안 한 자리를 지키는 광고판이 있다는 사실도 놀랍다. 네온 광고의 내용도 전혀 바뀌지 않았고, 마라톤을 완주한 글리코 아저씨는 과거와 똑같이 손을 번쩍 든 자세로 골인하고 있다. 옛 광고판을 바꾸지 않고 그대로 지키면서 역사를 만들어버린 스토리텔링이 대단하기만 하다.
이 마라토너 광고판은 단순한 자세와 표정을 가지고 있지만 묘한 매력을 가지고 있다. 옛 광고판의 추억어린 디자인이 남아있어서 사람들을 더 잡아끄는 것 같다. 그래서 이 광고판 앞에서 수많은 관광객들이 이 마라코너가 골인하는 모습을 흉내내며 사진을 찍고 있다. 에비스바시 여기저기서 양 팔을 번쩍 들어 올린 여행자들의 모습이 웃음을 자아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