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창기 영국 해군함정의 모습이다. 18세기 당시 영국해군의 가장 큰 적은 괴혈병이었다. 사진은 유병용의 <과학으로 만드는 배>(지성사)에서 발췌.
장태욱
쿡 선장이 린드의 실험 논문을 읽어봤는지 알 수는 없지만, 괴혈병을 극복하기 위해 기울인 노력은 린드가 제안한 방식과 일치했다. 우선 배를 청결하게 유지했으며, 깨끗한 물을 충분히 실었다. 그리고 언제든 가능하면 신선한 식품을 구비했으며 특히, 양배추 ·오렌지· 레몬 등 괴혈병 치료에 좋다는 식품을 선원들이 언제든지 먹을 수 있도록 관리했다.
1772∼1775년에 레졸루션(Resoution) 호를 타고3년 17일 동안 11만 킬로미터를 항해하는 기록적인 장기항해에서도 쿡 선장은 괴혈병에게 단 한 명의 선원도 내주지 않았다. 그는 그 공로를 인정받아 영국학사원의 정회원이 되었다.
그리고 또 한 명의 거장인 길버트 블래인은 린드와 같은 스코틀랜드 출신으로, 영국해군에 소속된 의사였다. 그는 오래전부터 린드의 논문을 읽고 감귤이 괴혈병 치료에 특별한 효능이 있다는 확신을 갖고 있었는데, 1779년에 영국 해군함대에 내과과장으로 임명되었다.
그는 내과과장으로 임명되는 해에 인도로 가는 서포크(Suffolk)호에 승선하여 약 160일 동안의 긴 항해에 동참했다. 서포크호는 인도로 가는 동안 중간 기착지 없이 항해를 이어갔기 때문에, 블레인은 이 기간을 이용해 괴혈병의 예방 및 치료에 관해 실험을 수행할 수 있었다.
제임스 쿡과 길버트 블래인, 괴혈병을 극복한 두 거장그는 항해 도중 날마다 전체 선원들에게 럼주· 물·설탕·레몬·쥬스 등을 혼합한 음료를 제공했는데, 초반에는 선원들 사이에 괴혈병 환자가 발생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항해가 오래 진행되었을 때 몇몇 선원들에게서 미약하게나마 괴혈병 초기 증세들이 나타났다. 블레인은 괴혈병 증세를 보이는 선원들에게 오렌지 주스와 레몬주스를 추가로 제공했는데, 그 결과 환자들이 깨끗이 완치되었다.
이런 과정을 거친 후, 1795년이 되어서야 영국 해군성은 괴혈병 예방을 목적으로 모든 해군 병사들에게 감귤주스를 제공하기 시작했다. 린드가 사망한 이듬해이고, 논문을 발표한 지는 42년 만에 이뤄진 결정이었다. 나중에는 오렌지와 레몬 대신에 라임오렌지 주스를 제공했는데, 이는 당시 영국이 캐리비안 연안의 식민지를 통해 라임오렌지를 쉽게 구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영국해군성의 결정은 효과를 발휘해 19세기에 들어서자 괴혈병은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한편, 영국해군 병사들이 육지에서 라임 주스를 마시는 장면을 자주 목격한 미국해군 병사들은 영국 해군을 "라임주스쟁이(lime-juicers)"라고 놀리다가, 나중에는 줄여서 "라임쟁이(Limeys)"라 부르게 되었다. 이 애칭이 굳어져 "Limeys"는 영국해군 병사들은 물론이고 영국인 전체를 부르는 속어가 되었다.
감귤의 성분이 괴혈병을 예방한다는 사실은 실험적으로 검증이 되었지만, 감귤의 어떤 성분이 그 역할을 하는지는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밝혀졌다. 특히, 1930년대 초 많은 과학자들이 괴혈병을 치료하는 성분을 찾기 위해 노력을 기울였는데, 1937년 노벨위원회는 헝가리인 알베르트 센트죄르지(Szent-Györgyi)에게 비타민 C(아스코르빅 산 ascorbic acid이라고 하는데, 어원은 영어의 antiscorbutic, 항괴혈병 분자와 같다)를 분리 추출한 공로로 노벨 생화학·의학상을 수여했다. 그리고 월터 노먼 호워스(Walter Norman Haworth)에게는 비타민C의 구조를 밝혀낸 공로로 노벨 화학상을 수여했다. 비타민C의 발견은 1930년대 인류가 이뤄낸 최대의 업적으로 손꼽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