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르단 여행
김동우
다운타운에 도착한 뒤 택시기사는 뒤쪽으로 몸을 돌려 내게 손가락 하나를 펴 보였다. 1디나르란 얘기였다. 할 말은 해야 직성이 풀리는 고약한 성격 탓에 그냥 내릴 수가 없었다.
"원 디나르! 원!"택시기사의 얼굴이 순식간에 흙빛으로 변했다. 그는 내 손에서 돈을 빼앗듯 가져가며 큰 소리로 웃음을 이어갔다. 어찌나 거짓 웃음이 힘들었는지 택시기사는 토끼눈이 돼 있었다. 역시 내 성격상 이 정도로는 성미가 풀리지 않았다. "이 친구, 학생이야. 암만에 대해서 잘 모르잖아." 택시기사에게 당부를, "암만에 대해서 공부 좀 해!" 얼빠진 폴란드 친구에게는 충고를 남겼다.
하지만 내 말을 들은 둘은 다시 서로를 바라보며 '껄껄'거리기 시작했다. 소심한 반전을 노렸지만 역부족이었다. 그렇다고 영업을 방해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참 난감한 상황이었다. 분명 얼뜨기 친구는 19달러를 헌납하고 기분 좋게 택시에서 내렸을 거다. 택시기사에게는 분명 수지맞은 날이었을 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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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낭여행자들의 숙명 '네고', 이것만 지켜라!
▲ 당당해라. 돈을 내는 건 나다. ▲ 아니다 싶으면 뒤돌아보지 마라. 네고의 상대들은 차고 넘친다. ▲ 절대로 택시기사들의 말을 믿지 마라. ▲ 적정선이라고 판단되면 미련 없이 줘라. 결국, 깎는 가격은 많지 않다. 뭐든 적당히 하자. ▲ 최저가에 목매지 마라. 여행 전체의 분위기를 다운시킨다. ▲ 모르면 당한다. 알아야 협상이 된다. ▲ 단체라면 최대한 인원이 많은 걸 활용해라. 협상은 혼자일 때가 가장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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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3] 최고의 협곡 트레킹 '와디 무지브'체육을 전공하고 있는 22살의 건강한 처자 진원이를 만난 건 만수르호텔에서다. 1년 넘게 해외를 떠돌고 있는 진원이는 당차고 솔직했다. 거침없지만 신중했다. 불확실한 미래에 대해 걱정이 많은 나이답게 진원이의 질문 중에는 진로에 대한 것이 많았다. 난 좋아하는 걸 먼저 찾으라고 했고, 진원이는 뭘 좋아하는지 잘 모르겠다고 했다. 그런데 어릴 적 꿈을 잃어버린 내가 이런 조언을 해도 될까 싶었다. 나도 날 찾으러 여행을 떠나지 않았던가. 어찌 보면 진원이와 난 같은 고민을 하고 있었다.
시티투어를 마치고 진원이와 저녁 식사를 함께했다. 진원이는 나의 경험을 궁금해했고 난 그런 모습을 통해 15년 전 나를 돌아볼 수 있었다. 하지만 세월이 느껴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진원이와 난 의기투합해 다음날 '와디 무지브(Wadi Mujib)'로 협곡 트레킹을 가기로 했다. 사해를 보고 암만을 떠나야겠다고 생각하던 중 와디 무지브를 알게 됐고, 사진을 찾아보니 내 눈을 단박에 사로잡는 곳이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와디 무지브는 요르단에서 자연경관이 가장 잘 보존된 곳 중 하나였다. 암만에서 1시간 30분 정도의 거리로 이동에 대한 부담도 적었다.
가는 길에 사해를 볼 수 있다는 장점도 있었다. 최상의 조합은 택시 대절 비용을 가장 절약할 수 있는 4명이다. 일본 친구들은 4명을 맞춰 다음날 와디 무지브와 사해를 보고 온다고 했다. 떠나든지 기다리든지 선택을 해야 했다. 쪽수에서 밀렸지만, 더 고민하는 건 시간 낭비였다. 우리는 떠나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와디 무지브까지 택시 대절비용은 25디나르였고, 입장료가 15.5디나르였다. 오전 10시 30분 택시기사가 숙소로 찾아왔다. 시골 아저씨처럼 생긴 팔레스타인 사람이었다. 출발하자마자 택시기사는 나에게 담배를 권하며 이것저것 질문을 이어갔다. 어제 경험한 택시기사의 연기력이 오버랩됐다.
암만을 벗어나자 성경에 나오는 '광야'란 표현이 딱 어울릴 법한 황량한 구릉지대가 펼쳐졌다. 조금 더 가자 'Dead Sea'란 표지판이 눈에 들어왔다. 물속에 들어가면 몸이 둥둥 뜨는 것으로 유명한 사해였다. 염분의 농도가 높아 어떤 생명체도 살 수 없다는 곳. 여기선 이곳을 '암만 비치'라고 부른다.
▲요르단 여행
김동우
물이 증발하면서 남은 소금이 해안선을 따라 하얗게 선을 그리고 있었다. 건너편은 이스라엘 땅이었다. 암만에서 만난 많은 여행자는 요르단에서 이스라엘로 넘어간다고 했다. 사해의 풍경을 감상하며 조금 더 달리자 와디 무지브 매표소가 나왔다. 수영복과 구명재킷을 입었다. 계곡에 들어서자 자연스레 탄성이 흘러나왔다. 양쪽으로 갈라져 있는 협곡은 마치 사포로 밀어놓은 듯 매끄러웠다.
"여기 오길 진짜 잘한 것 같아요!"진원이가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기대 이상인데, 정말!"
▲요르단 여행
김동우
협곡을 거슬러 올라갈수록 물살은 점점 거세졌다. 장대한 협곡의 깊이는 햇빛이 비집고 들어올 틈조차 허락하지 않았다. 이렇게 깊고 웅장한 협곡은 난생처음이었다. 카메라 앵글로는 협곡의 크기를 감당할 수가 없었다. 협곡의 폭이 좁아졌다 넓어졌다 하는 변화무쌍한 코스는 외계행성에 와 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물살을 가르며 걷는 속도는 그리 빠르지 않았다. 빨리 걸을 필요도 없었다. 하늘을 향해 고개를 젖히고 자연이 만든 경이로움을 감상하며 한발 한발 내딛으면 그걸로 족했다. 협곡안으로 들어갈수록 벌어진 입은 점점 커져갔다. 그러다 작은 폭포가 앞길을 막아섰다. 로프를 잡고 다리를 최대한 찢어 바위에 올라타야 하는 난코스였다. 경사면을 타고 거센 물살을 맞으며, 목까지 차오르는 수심을 이겨내는 일이 녹록지 않았다.
먼저 진원이가 시도했다. 체대생이라 내심 기대를 했지만 역부족이었다. 밧줄을 잡고 몇 번이나 시도해봤지만 진원이는 목까지 차오르는 물속에서 허우적대기 바빴다. 그렇다고 내가 젊은 처자의 엉덩이를 밀어 올릴 수도 없었다. 따로 안전시설이 없어 겁을 먹게 했던 '천연 미끄럼틀', 사포로 밀어놓은 것 같은 바위가 마치 외계행성에 온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요르단 여행
김동우
난감한 상황이었다. 보다 못한 요르단 여성이 우리를 도와주겠다며 다가왔다. 그녀는 이슬람 여성답게 입고 쓰고 가리고, 격식있는 복장으로 협곡 트레킹을 즐기고 있었다. 와디 무지브보다 더 대단해 보이는 광경이었다. 그녀는 과감하고 힘차게 진원이의 엉덩이를 밀어 올렸다. 몇 번의 실패 끝에 바위에 올라서는 데 성공했다. 이번엔 내 차례였지만 나도 어렵기는 마찬가지였다. 결국 히잡을 곱게 쓰고 있는 그녀에게 내 엉덩이를 조건없이 맡긴 뒤에야 험난한 코스를 통과할 수 있었다.
난코스가 나올 때마다 저길 어떻게 올라가나 싶었는데 요르단 사람들은 그때마다 우리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다. 무지막지한 협곡의 스케일 앞에서 우리는 즐겁기만 했다. 물속에 앉아 있으니 물고기들이 내 살을 쪼아대기 시작했다. '닥터 피쉬'였다. 그간의 여행으로 제대로 제거하지 못한 각질이 좋은 먹잇감이 됐다. 한 시간 넘게 협곡을 거슬러 오르자 드디어 종착점인 폭포가 나왔다(20명 이상의 단체라면 폭포 위까지 올라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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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우
물이 목까지 차오르는 폭포 밑으로 들어가니 천연 두피 마사지가 따로 없었다. 가장자리로 더 들어가자 고개가 덜덜 떨릴 정도로 물살이 거셌다. 시원하게 두피마사지를 하곤 방수기능이 있는 등산용 드라이색에 넣어둔 카메라를 꺼냈다. 두 손 두 발을 다 사용해야 하는 난코스가 많고, 물이 목까지 잠기는 수심 깊은 곳도 있어서 와디 무지브에 카메라를 가져오는 건 위험부담이 크다.
나도 출발 전 카메라를 챙겨야 할지 고민이 많았다. 그런데 이런 곳에 어찌 카메라를 안 가져올 수가 있단 말인가. 욕심을 좀 냈다. 다행히 드라이색이 톡톡히 자기 역할을 해냈다. 카메라를 꺼내자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하나둘 몰려들었다. 이 순간만큼은 와디 무지브 최고 인기남으로 손색이 없었다. 다들 내 이메일주소를 물어보기 바빴다.
▲요르단 여행
김동우
올라가는 길이 온몸을 다 써야 하는 난코스였다면 내려가는 길은 공포심과의 싸움이었다. 하지만 약간의 용기만 있으면 매끈한 바위를 미끄럼틀 삼아 최고의 스릴을 느낄 수 있는 장소이기도 했다. 지그시 두 눈을 감고 바위에 몸을 맡겼다. "풍덩" 워터파크 부럽지 않은 짜릿함이 온몸을 휘감았다.
여행은 가끔 생각지도 않은 장소와 상황에서 우연을 필연으로 만들며 기쁨과 행복을 안겨준다. 우린 그걸 '인연'이라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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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르단에서 이스라엘을 다녀올 때 여행자들이 주의할 점이 하나 있다. 이스라엘은 우리나라와 비자면제협정을 체결한 국가로 여권만 있으면 90일간 체류할 수 있다. 그러나 여권에 이스라엘 입국 도장이 있으면, 다른 이슬람권 국가에서 입국이 거부될 가능성이 크다. 이스라엘 입국 시 별도의 종이에 입국도장을 찍어달라고 요청하는 이유가 이 때문이다. 여행 루트를 짤 때 꼭 고려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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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고, 찍고, 쓰고, 생각하며 살고자 합니다.
행복의 무지개가 가득한 세상을 그립니다. 오마이뉴스 박혜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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