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겉그림
꽃자리
시골마을에서 목사로 일하는 한희철 님이 쓴 <늙은 개가 짖으면 내다봐야 한다>(꽃자리, 2016)를 읽습니다. 한희철 님은 '속담'이라는 말보다는 '옛글'이라는 말을 씁니다. 197가지 옛글을 놓고 오늘날 삶을 돌아보는 새로운 이야기를 풀어놓습니다.
시골에서 살며 손수 시골일(흙일)을 하기도 하면서 옛글(속담)을 되새긴다고 합니다. 시골에서 사는 사람들한테 '살아가는 뜻'을 교회에서 들려주려고 옛글을 되읽는다고 해요.
한숨도 버릇되는 것이라면 절망도 원망도 슬픔도 버릇 아닐까? 웃음도 희망도 사랑도 버릇일지 모른다. 타고난 성품으로서가 아니라 순간순간 내가 가진 마음의 결과가 켜켜 쌓여 만든 결과일 것이다. (75쪽) 어느새 우리들의 삶은 농사와 거리가 먼 삶을 살고 있지만 그래도 비가 올 때마다 아름다운 우리말 몇 개쯤은 떠올릴 수 있었으면 좋겠다. (84쪽)'시루에 물은 채워도 사람의 욕심은 못 채운다'라든지 '늘 쓰는 가래는 녹이 슬지 않는다'라든지 '호미 빌려간 놈이 감자 캐 간다' 같은 말은 모두 시골말입니다. '썩은 감자 하나가 섬 감자를 썩힌다'나 '윗논에 물이 있으면 아랫논도 물 걱정 않는다' 같은 말은 모두 시골말이에요. 시골에서 시골일을 하는 동안 시골사람이 스스로 겪은 삶을 짤막한 말로 남겨서 흘러온 이야기예요.
오늘 우리는 흔히 '속담·격언·잠언'이라 말하기도 하지만, 이러한 이야기를 곰곰이 따진다면 '시골말'이나 '시골슬기'나 '흙말'이나 '흙슬기' 같은 새 이름을 붙여 볼 만하구나 싶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이 모든 말은 시골에서 태어났고, 흙에서 자랐기 때문입니다. '속(俗)'이나 '옛'이라는 이름하고는 사뭇 다른 자리에서 흐르는 말이지 싶어요.
시골에서 살며 시골일을 하는 시골사람은 '논밭'이라 말합니다. '콩'하고 '팥'을 말합니다. '호미·낫·쟁기'를 말합니다. '봄·여름·가을·겨울'을 말합니다. '씨앗·가을걷이·설·한가위'를 말합니다. '도랑·고랑'을 말합니다. '날씨'를 말하고 '바람·하늘·비·눈'을 말합니다. 가만히 살피면, 이런 시골말을 놓고 도시에서는 으레 '한자로 옷을 입힌 다른 말'을 쓰기 마련입니다. 흙을 만지지 않는 관청 일꾼도 시골말을 잘 안 써 버릇합니다.
'돌이'와 관련된 말 중에 '돌이마음'이란 것이 있다. "사심을 돌려 바르고 착한 길로 들어서는 마음"이라는 뜻이다. "마음을 돌려먹는다" 해서 '돌이마음'이라 하지 않았을까 싶다. (136쪽)'옹달'이란 말이 들어가는 낱말 중에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옹달솥'은 "작고 오목한 솥"이란 뜻이다. '옹달시루'란 "작고 오목한 시루"라는 뜻이요, '옹달우물'은 "작고 오목한 우물"이란 뜻이다. (146쪽)한희철 님은 <늙은 개가 짖으면 내다봐야 한다>라는 책을 빌어서 '돌이마음'이나 '바위옷'이나 '옹달'이나 '겉볼안'이나 '언구럭'이나 '도사리' 같은 시골말을 새롭게 살려서 오늘날에도 넉넉히 쓸 만하다는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흙을 가꾸면서 살림을 짓던 오래된 말마디마다 깃든 따사로운 슬기를 돌아보자고 이야기합니다. 오늘날 사람들이 시골이 아닌 도시에서 매우 많이 살고, 흙을 만지기보다는 흙하고 멀어진 일을 하더라도, 누구나 밥을 먹는 살림인 만큼 '밥이 태어난 흙자리'를 되새기는 말(슬기로운 말)을 마음에 얹어 보자고 이야기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