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전사랑 배추몇 해 전 우리 가족이 외출하고 돌아왔을 때, 현관 앞에 누가 몰래 가져다 둔 배추다. 배추 본 김에 김장 했다. 이런 사랑을 우리 부부는 '문전사랑'이라고 부르기로 했다. 시골 살면 이런 문전사랑은 기본이다.
송상호
이러한 사랑을 받다 보면, 한 가지 알게 되는 뜻밖의 사실이 있다. 바로 요즘이 '무슨 철'인지 알게 되는 것. 감자 다발이 문 앞에 있으면 감자철, 오이 다발이 문 앞에 있으면 오이철, 고추 다발이 문 앞에 있으면 고추철인 게다.
우리도 약간의 텃밭을 하고, 마트에 가서 각종 채소를 사 먹지만, 아무래도 제철에 난 갓 따온 채소만 하랴. 그것도 마을 어르신들의 사랑을 담은 채소라면 금상첨화 아니겠는가. 오늘 우리 문 앞에 도착한 '사랑'은 요즘 '시금치철'이라 말해주고 있다.
지난 일이지만, 이 사랑의 범인(?)을 색출하는 데 성공했다. 누굴까? 몇 분이 우리 부부의 수사선상(?)에 들었고, 예상대로 그분들 중 한 분이었다. 바로 '대장금 할머니'. 우리 흰돌리마을에 체험 학생들이 오면, 20명이든 30명이든 겁내지 않고, 혼자서 척척 음식 손님을 치러내기에 붙여진 별명이다. 그래서 며칠 후 우리 부부는 귀여운 복수(?)를 하기로 했다.
"우리도 그거 한 번 해보자."아는 분으로부터 우리 '더아모의집(더불어 사는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어가는 모임의 집, 아내와 내가 목회하며 우리가 사는 집)'에 빵세트가 들어왔다. 이걸 어떻게 하지. 마을 어르신들이 계시는 마을회관에 가져다 드릴까. 그랬다. 며칠 전 일에 대한 복수(?)를 하기로 했다.
빵세트를 들고 처음 찾아간 집은 우리 마을 '기차 화통' 형님 집이다. 이 형님은 60의 나이에도 말씀하실 때 어찌나 쩌렁쩌렁한지, 내가 붙여준 별명이다. 어찌나 쩌렁쩌렁한지 거짓말 조금 보태서 10리 밖 들녘에서 하는 이야기를 방에서 듣곤 했다.
이 형님에게 복수(?)하는 것은, 지난해에 우리 텃밭을 무료로 '트랙터질' 해 갈아엎어주셨기 때문이다. 몰래 가져다 드리려고 했지만, 실패했다. 그 집 아들이 있었다. 어색한 웃음을 웃으며 자리를 떴다.
이번엔 '대장금 할머니' 차례다. 집 앞에 도착했다. 사실 들켜도 아무 상관없다. 그냥 인사하고 드리면 서로 좋다. 하지만, 받은 게(몰래 사랑) 있으니 돌려 드려야 하지 않겠는가. 일부러 연출한 게 아니라 우리 부부가 없어서 그리 하신 것임을 알지만 말이다.
"엄니, 엄니! 계셔유?"아무 소리도 없다. 밭일 하러 나가셨나 보다. '아싸', 현관문을 열었다. 신발만 있고, 엄니는 안 계신다. 입구 거실 바닥에 빵세트를 조심스레 놓았다. 들킬 새라 살금살금 뒷걸음질을 치며 나왔다. 그거 아는가. 계획대로 범행(?)이 성공했을 때의 짜릿함을. 난 미소를 머금고 현장을 빠져 나왔다.
우리의 '범행'이 들통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