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키스탄 여행
김동우
다음날 아침 이슬라마바드로 가기 위해 다시 지프에 몸을 실었다. 밤사이 내린 비와 우박으로 지옥 길은 더욱 위험천만해 보였다. 악몽 같은 길이 다시 시작됐다. 앞자리에 앉은 난 안전장치 없는 롤러코스터에 탄 것처럼 얼굴이 하얗게 질려 있었다.
천신만고 끝에 라이콧브리지에 도착했다. "휴~"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헤어질 시간이었다. 나머지 지프 비용을 내밀었다. 첫날 같이 지프를 타고 온 친구들은 그새 정이 들었는지 한사코 돈을 받지 않겠다고 했다. 그런 그들의 마음이 무척이나 고마웠다. 그래도 줄 돈은 줘야 마음이 편했다. 안 받겠다는 돈을 한국식으로 호주머니에 찔러 넣었다. 3일이란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들과 만든 추억은 30년이 지나도 잊지 못할 것 같다.
이제 내가 해야 할 일은 언제 올지 모를 이슬라마바드행 버스를 기다리는 것이었다. 한 시간 정도 망연히 버스를 기다렸을까. 텅 빈 25인승 버스 한 대가 먼지를 날리며 라이콧브리지 앞에 정차했다. 놀란 마음에 승객이 하나도 없는 텅 빈 버스에 올랐다. 파키스탄에서 본 가장 좋은 버스였다. 구세주를 만난 느낌이었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본능적으로 불안감이 찾아들었다. 이런 좋은 차가 빈 차로 운행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왜 승객이 아무도 없죠?""근처 호텔로 학생들을 태우러 가는 길이에요.""네? 학생들이라니요?""페리메도우에서 내려온 학생들에게 전화가 왔어요. 라이콧브리지에서 외국인 한 명을 태우고 오라고...""정말요? 이슬라마바드에서 온 학생들인가요?""맞아요!"이날 아침 먼저 라이콧브리지로 내려간 10여 명의 대학생들이었다. 전날 학생 중 한 명이 버스를 같이 타고 가자는 말을 하긴 했지만, 지프를 타고 하산하는 시간이 달라 만날 수 있을 거라고는 확신을 못했다.
버스 기사는 학생들이 라이콧브리지 근처 호텔에서 짐을 찾은 뒤 쉬고 있다고 말했다. 얼마 가지 않아 호텔 앞에 버스가 섰다. 텅 빈 버스 안에 혼자 앉아 있는 나를 향해 하나둘 손을 흔들기 시작했다. 기적 같은 일이었다.
"슈크리아(감사합니다)."눈물이 날 것 같았다.
여행 정보 |
파키스탄에서 물보다 더 많이 마신 짜이는 이 나라뿐 아니라 인도를 비롯해 남아시아권 국가에서 차를 의미하는 말로 통용된다. 짜이의 원조는 인도다. 인도인의 홍차 문화는 영국이 인도를 지배할 때 생겨난 것이다. 이 때문에 컵의 내용물을 접시받침에 옮겨 마시는 등 낡은 영국풍의 차 문화가 남아 있는 곳이 일부 있다.
짜이는 매우 서민적인 음료로 홍차를 끓여낸 후 많은 양의 우유를 더해 장시간 우려내면 완성된다. 거기다 기호에 맞게 설탕을 첨가하면 나만의 짜이가 완성된다. 파키스탄을 떠난 뒤에도 짜이는 내 기억 속에 오랫동안 남았다. 가만히 의자에 앉아 한가로이 시간을 보내는 데 없어선 안 될 짜이. 파키스탄을 방문했다면 그 여유와 맛을 꼭 즐겨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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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3] 트레킹보다 힘든 버스, 버스, 버스이슬라마바드로 가는 16시간 동안은 평생 잊지 못할 순간의 연속이었다. 이동 중 두 번의 식사를 했고, 2~3시간마다 차를 마시며 휴식을 취했다. 또 버스는 기도시간마다 정확히 모스크 앞에 멈춰 섰다.
그런데 내가 쓴 돈은 차비밖에 없었다. 밥과 차, 음료수 등 모든 게 무료서비스로 제공됐다. 열 살도 더 어린 파키스탄 대학생들은 호주머니에서 돈을 빼낼 틈조차 주지 않았다. 현지음식을 맛있게 먹으면 도리어 고마워하는 사람들이었다. 아무리 없어 보이는 여행자라고는 하지만 이건 인간 대 인간으로 도리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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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우
무엇으로든 답례를 하고 싶었다. 버스가 휴게소에 정차했다. 조용히 음료수를 꺼내와 가게 주인장 앞에 섰다. 행동이 커지면 학생들이 분명 날 막아설 게 뻔했다. 도둑고양이처럼 살금살금 음료수를 품에 안고 값을 치르려고 했다. 그런데 가게 주인은 내게 돈을 받을 수 없다고 했다. 그는 내 뒤를 가리켰다. 고개를 돌려보니 언제 왔는지 학생 한 명이 내 뒤에 서 있었다.
'된장! 걸렸다!'저녁을 먹기 전 버스가 하얀 먼지를 날리며 모스크 앞에 정차했다.
"무엇을 위해 기도를 하니?""킴, 네 종교는 뭐야?""가톨릭.""오! 그래. 그럼 우리 형제네. 우리는 너의 행복과 평안 그리고 지구와 우주의 평화를 위해서 기도해.""진짜? 네가 개인적으로 바라는 것을 위해서는 기도하지 않니?""그럴 때도 있지만, 보통은 주위 사람들의 행복을 위해서 기도해."짧은 대화였지만 이슬람교에 대한 선입견이 한순간에 무너져 내렸다. 여행은 관점이 바뀔 때 가장 가치있다. 우리의 종교는 분명 달랐지만, 너와 내가 평화롭고 행복했으면 하는 마음은 같았다. 사실 따지고 보면 이슬람교와 기독교의 뿌리는 하나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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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4시 30분쯤 이슬라마바드에 도착했다. 학생들은 내 행선지를 묻고는 택시기사와 가격협상까지 해주었다. 개중에는 전화번호를 적어주면서 무슨 일이 생기면 꼭 전화하라는 당부도 잊지 않았다.
'한국에 가면 나도 이렇게 살 수 있을까.'이슬라마바드 근처 라왈핀디 대우 버스터미널. 파키스탄에서는 '대우 버스'란 이름으로 우리 기업이 운수업을 하고 있다. 이 나라에서 최고급형 버스를 보유하고 있는 회사이기도 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45인승 버스가 파키스탄에서는 가장 좋은 버스인 셈이다.
곧장 파키스탄의 남쪽 끝 도시 카라치로 가는 버스를 타야했다. 24시간이 걸리는 이동이었다. 이른 시간이었지만 터미널은 사람들로 북적였다. 카라치행 버스는 9시부터 티켓을 판매한다고 했다. 4시간을 기다려야 했다. 별수 없이 자리를 잡고 기다렸다. 지루한 기다림이었다. 말벗이라도 있으면 좋으련만...
혼자 남겨지면 화장실에 가는 게 가장 큰 고민거리다. 마땅히 짐을 맡겨 놓을 곳도 없고, 배낭을 메고 화장실에 들어가는 것도 여의치 않다. 이리저리 눈치를 보다 마음씨 좋은 아저씨에게 배낭을 좀 봐달라고 했다. 그는 영어를 알아듣지 못했지만, 손짓으로 내 배낭을 만지며 고개를 끄덕였다.
오전 9시가 다 돼서야 탑승대기자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승무원은 30분 뒤 첫차가 출발하니 그때 이름을 부르면 오라고 했다. 현지어로 안내방송이 나왔다. 티켓부스에선 '미스터 킴'을 찾고 있었다.
"버스 요금이 얼마죠?""3750루피입니다.""잠... 잠깐만요... 뭐라고요?""3750루피.""이럴 리가 없는데." 지갑을 탈탈 털어보니 3200루피밖에 없었다. 사전 정보에 따르면 버스가격이 이렇게 비싸지 않았다. 그새 버스요금이 오른 건가 아니면 내가 정보를 잘못 찾은 건가, 난감한 상황이었다. 승무원은 어이가 없다는 듯 나를 쳐다봤다. 분명 다른 사람도 똑같이 3750루피를 내고 있었다. 사기를 치는 건 아니었다. 승무원은 돈이 없다는 날 황당한 눈으로 쳐다봤다. 그는 ATM이 있는 곳을 가르쳐 주었다. 그런데 카드가 먹질 않았다.
"아놔!" 급히 배낭을 둘러메고 밖으로 나갔다. 상점에 들어가 근처에 ATM이나 환전할 곳이 있느냐고 물으니 시내로 들어가야 한다고 했다. 순식간에 택시기사들이 날 둘러쌌다. 다들 라왈핀디 시내에 있는 시티은행까지 왕복으로 400루피를 내라고 했다. 급한 마음에 일단 300루피에 네고를 하고 택시를 잡아탔다.
▲파키스탄 여행
김동우
택시기사는 은행들이 모여 있는 뱅크스트리스에서 한참을 헤매다가 물어물어 시티은행을 찾았다. 그런데 이게 무슨 운명의 장난인지 때마침 ATM이 수리를 하고 있었다. 시트콤을 찍는 것도 아니고 인생이 이렇게 한순간에 꼬일 수 있다는 말인가. 시티은행의 초저가 1달러 수수료를 포기하고 옆에 있는 은행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맙소사!' 여기 ATM도 고장이었다. 제대로 황당 시추에이션이었다.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다시 시티은행으로 발길을 돌렸다. 왠지 시티은행에는 방법이 있을 것 같았다. 터벅터벅 힘없이 다시 은행 문을 열고 들어섰다. 은행직원이 날 보고 함박웃음을 지었다. 그는 15분 뒤면 수리가 다 된다고 했다.
"헐~"서둘러 돈을 찾아 터미널로 돌아왔다. 요금을 내기 전 택시기사는 '씨익' 웃으며 내게 물었다.
"얼마 줄래?""300루피 준다고 했잖아.""알지. 그런데 내가 너를 위해서 모르는 길을 열심히 찾아 주었잖아.""(결국, 이거였지) 알았어, 알았어, 400루피."오전 10시 30분 카라치행 버스에 올라타니 어여쁜 안내양이 음료수를 내밀었다. 중간에 간식을 챙겨주는 것도 잊지 않았다. 버스는 24시간 동안 달려 다음날 오전 카라치 대우버스터미널에 도착했다. 페리메도우에서 시작한 50시간이 넘는 긴 여정이 끝나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이번 여정에서 하나는 분명해졌다. 앞으로 여행이 끝날 때까지 이런 초장거리 이동은 절대로 하지 않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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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우
그들이 말했다."넌 네가 사랑하는 그 사람 때문에 미친 거야."나는 대답했다."미친 사람만이 생의 맛을 알 수 있어."-야피, 라우드 알 라야힌난 점점 여행에 미쳐가고 있었다.
여행 정보 |
파키스탄의 가장 남쪽 도시 카라치는 보통 여행자들이 잘 찾지 않는 곳이다. 그래서 여행 정보를 찾는 데 애를 먹은 곳 중 하나다. 이곳을 찾는 여행자들은 비행스케줄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머무는 경우가 종종 있다.
여행자 숙소는 사다르 바자르에 몰려 있다. 현지에서 '사다르'라고 하면 알아듣지 못하고 '사달~'이라고 하면 더 잘 이해한다. 사실 카라치에는 마땅한 여행자 숙소가 없다. 그나마 갈 수 있는 곳은 바자르 안쪽에 걸프호텔, 유나이트호텔, 릴리안스호텔 등이다.
난 걸프호텔에 묵었다. 하룻밤에 2200루피짜리 방을 2000루피에 투숙했다. 여행 중 가장 비싼 방이었다. 에어컨이 있고, 화장실이 딸려 있는 시설에 만족했다. 걸프호텔에서 공항까지는 30~40분 걸린다. 호텔밴은 공항까지 800루피를 달라고 했다. 주변 상인들에게 물어보니 택시를 타면 500~700루피 사이라고 했다. 하지만 실제로 공항까지 택시를 타고 지불한 돈은 350루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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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의 무지개가 가득한 세상을 그립니다. 오마이뉴스 박혜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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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을 수 없는 지옥길, 살짝만 밀려도 난 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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