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민주 중앙위원, 비례대표 공천 선출방식 이의 제기20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 대회실에서 열린 중앙위원회에서 한 중앙위원이 비례대표 공천 선출방식에 대해 "A,B,C 그룹으로 후보자 명단을 발표한 것은 장님이 코끼리 다리 만지는 식이다"며 "비대위에서 다시 심사숙고해서 재심해 달라"고 요구하자, 김종인 비상대책위원회 대표가 어두운 표정을 짓고 있다.
유성호
더불어민주당이 20일 20대 총선 비례대표 공천안을 발표했다. 언론에서는 김종인 대표가 2번을 배정받아 비례대표로 5선을 하게 되었다는 점을 크게 강조하고 있다. 대체로 비판적인 시각에서 다루고 있으며, SNS 등에서도 이 사안을 중심으로 찬반 양론으로 나뉘어 논쟁이 이뤄지고 있다.
그런데 필자는 이것은 문제의 본질이 아니라고 판단한다. 필자는 이번 더민주의 비례대표 공천안을 비판적으로 판단하고 있는데, 그것은 김종인 대표가 2번을 받았다는 점을 두고 그런 것이 아니다. 필자는 김종인 대표가 당선권에 배정받을 수 있다고 본다.
15번 정도로 당선 가능권 후순위를 배정받는 것이 더 낫다고 보기는 하지만 2번을 받는다고 해서 이것이 문제라고 판단하지 않는다. 그는 문재인 전 대표가 '경제민주화'라는 정치적 상징성 때문에 야심차게 영입한 인물이고 현재 당 대표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다른 후보자들이다.
비례대표 후보는 대표성, 상징성, 헌신성 갖춰야비례대표 후보는 한 명 한 명이 모두 대표성과 상징성을 갖고 있어야 하며 이를 위한 헌신에 있어 사회적 동의를 얻을 수 있어야 한다. 이 3가지 요인을 모두 갖출 수 있으면 금상첨화겠지만 그렇지 않으면 최소한 2가지 요인을 갖춘 사람이 비례대표 후보자가 되는 것이 옳다.
시민사회 내에 존재하는 여러 사회조직 중에서 정치적 지향점이 뚜렷한 경우도 특정 정당과 조직적인 결합을 하는 경우는 사실상 없다. 대신 정당과 해당 조직 상층 엘리트 세력들 사이의 낮은 차원의 연대 방식을 띠게 된다. 그리고 연대는 정책과 공천을 통해서 현실화된다.
이들은 직업 정치인이 아니기 때문에 지역구 단위 선거 경쟁력이 약하다. 그래서 공천의 경우 주로 비례대표를 통해서 선출직에 도전하는 양상을 보인다. 그러므로 당선권에 있는 비례대표 후보자의 경우 정당의 정체성과 그 당의 총선 전략을 대표하는 인물로 선정되어야 한다.
그리고 여러 사정상 지역구 후보자로 나서기에는 곤란하지만 정당에 소속되어 있거나 관련 분야 활동을 통해서 도덕성, 실력, 헌신성 등 여러 면에서 정치적 능력과 기여를 한 인물이 비례대표 후보자로 선출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래야만 정당의 내적 역량이 강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비례대표 공천의 경우 당선권에 배치된 사람들은 순번 배정과 동시에 당선이 사실상 보장되기 때문에 후보자 선정은 신중에 신중을 기해야만 한다. 더군다나 비례대표 의석이 54석에서 47석으로 줄었기 때문에 더욱 이 점에 유념해야만 한다. 그런 점에서 보면 이번 더민주의 비례대표 후보자 선출은 매우 심각한 문제점을 갖고 있다.
전략과 스토리가 없는 비례대표 공천안이번 공천안을 보면 더민주가 대변해야 하는 당의 정체성, 대표성, 헌신성 등 여러 요인에서 뚜렷한 가치를 내세우기 힘든 인사들이 당선권에 배치되었다. 단적으로 비례 1번을 받은 박경미 교수를 살펴보자. 비례대표 1번은 정당의 정체성, 총선 전략 등을 감안해서 최적의 후보자를 내는 것이 상식이다.
그런데 박경미 교수의 여러 활동을 살펴보아도 그가 1번을 받아야 할 상징성, 기여, 대표성 등에 있어 납득이 가는 부분이 거의 없다. 냉정하게 보면 1번은 고사하고 그가 당선권에 배정되어야 할 이유도 잘 보이지 않는다. 그가 1번을 배정받은 이유를 더민주와 김종인 대표는 설득력 있게 제시할 수 있을까?
더군다나 그는 김종인 대표가 선거 전략으로 강조하는 '경제' 분야와도 무관하다. 이를 지난 19대 총선과 비교해서 보면 당시 민주통합당의 경우 '양극화' 해소를 총선의 주된 이슈로 제기했다. 그래서 이를 대표할 수 있는 인물로서 비례대표 1번으로 전태일 열사 동생이자 노동문제 전문가인 전순옥 박사를 선정했다. 비례대표 1번은 그런 의미가 있는 것이다.
문제는 1번에만 국한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지금 더민주가 내세운 비례대표 공천안을 보면 해당 후보자들이 어떠한 전문성, 대표성, 상징성, 헌신성을 갖고 있는지 의구심이 드는 인물이 한 둘이 아니다. 문제점은 지난 19대 총선에서 새누리당 비례대표 후보자 공천안과 비교해 보면 더욱 부각된다.
지난 19대 총선에서 새누리당은 다문화 및 탈북자 관련 인사들을 비례대표 후보자로 선출하여 큰 반향을 일으킨 바가 있다. 당시 새누리당의 시도는 후에 상당수 진보 인사들도 무릎을 치게 할 정도로 매우 파격적이면서도 진보적이었다.
이처럼 비례대표 후보자는 한 명 한 명이 사회 내의 특정한 가치를 대변하는 중요한 의미가 있다. 그래서 이를 통해서 정당이 다른 부분의 약점을 만회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로 활용할 수도 있다. 특히 야당은 도전자이기 때문에 이러한 어젠다 세팅(agenda setting)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해야만 한다.
그렇게 볼 때 이번 더민주 비례대표 공천안은 매우 실망스럽다. 이번 공천안의 주제와 강점을 설명하는 것 자체가 어렵다. 심지어 후보자 중에서 기본적인 도덕성 문제가 거론되는 경우도 있다. 이러한 여러 가지 측면을 볼 때 이번 더민주 비례대표 공천안은 실망을 넘어 절망스러울 정도다.
한쪽이 빠진 김종인 중도화 전략의 한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