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겉그림
한티재
선생님! / 시험 문제가 왜 그래요? / 시험지를 막 씹어 먹고 싶었어요! (어린 염소의 등극)
예나는 예쁘다 / 생각만 했을 뿐인데 / 입이 벙싯거려지는 것도 / 조건반사 때문일까? (조건반사)중학교에서 교사로 일하는 박일환 님이 쓴 '청소년시'를 모은 <학교는 입이 크다>(한티재,2014)를 읽습니다. 박일환 님은 '어른시'도 '어린이시'도 아닌 '청소년시'를 일부러 썼다고 합니다.
그도 그럴 까닭이 중·고등학교 푸름이 눈높이를 헤아리면서 삶을 노래한 시를 찾아보기가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어른문학인 어른시는 여러 출판사에서 수없이 나오고, 어린이문학인 어린이시(동시)도 제법 여러 출판사에서 나오지만, 막상 '어린이에서 푸름이 자리에 들어선 숨결' 눈높이를 살피는 '청소년문학·청소년시'는 매우 드물어요.
별이 안 보인다고 투덜대자 별이 조용히 속삭였다 / 눈을 감아봐, 그러면 내가 보일 거야 (별은 숨어 있는 게 아니다)텔레비전에 나온 / 여자가 말했다. / 예쁜 것도 죄가 되나요? // 텔레비전에 나오지 못하는 / 여자 친구가 말했다 / 나도 예뻐지고 싶어! (괜찮은 인간)
열네 살부터 열아홉 살 사이인 아이들한테 따로 '푸름이(청소년)'라는 이름을 붙여 주는 오늘날입니다. 그러나, 이 아이들은 '푸름이'나 '청소년'이라는 이름보다는 '학생'이나 '수험생'이나 '입시생'이라는 이름을 훨씬 자주 듣습니다. '중1'부터 '고3'에 이르는 이름을 더더욱 자주 듣고요.
이리하여, 학생이요 입시생이자 중1이거나 고3인 푸름이는 '시'나 '문학'이나 '책'보다 자습서와 문제집과 교과서가 가깝습니다.
책방을 한번 둘러보셔요. 책방마다 아주 넓게 자리를 차지한 '책'은 바로 자습서와 문제집과 참고서입니다. 한국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책'은 '인기 베스트셀러'가 아니라 자습서랑 문제집이랑 참고서예요. 오늘날 한국 푸름이는 자습서랑 문제집이랑 참고서 하고 씨름을 해야 해요. 이러다 보니 중학교 교사 박일환 님은 따로 청소년시를 써서 이 아이들 넋에 고운 바람 한 줄기를 베풀어 주고 싶습니다.
할머니만 무릎이 시린 게 아녜요 / 겨울에 교실에 앉아 있어 봐요 / 무릎이 얼마나 시리다고요 (무릎담요)엄마는 늘 / 쓸데없는 생각 말고 공부나 하라는데 / 쓸 데 있는 생각은 어ㄸ너 걸까? (어느 날의 일기)청소년시집 <학교는 입이 크다>는 책이름처럼 '입이 큰' 학교를 다룹니다. 자, 입이 큰 학교는 어떤 곳일까요? 입이 큰 개구리 같은 곳일까요? 아니면 입이 큰 괴물 같은 곳일까요? 입이 큰 감옥 같은 곳일까요? 입이 큰 신나는 놀이터 같은 곳일까요?
학교도 학교 나름이기 때문에, 슬기로운 교사가 아름다운 아이를 가르치는 배움터가 있습니다. 슬기롭지 못한 교사가 사랑스러운 아이를 윽박지르거나 모질게 다루는 감옥 비슷한 곳도 있어요. 오직 입시에 치우친 채 아이들이 햇볕 한 줌 못 쬐면서 책상맡에서 온 하루를 고분고분 보내야 하는 곳이 있지요.
초·중·고등학교 가운데 혁신학교라는 '새로운' 학교가 생긴다 하더라도, 대학교에는 '혁신 대학교'가 없습니다. 공공기관이나 회사나 공장에서도 '혁신 공공기관'이 없지요. 부속품이 아닌 오롯한 한 사람으로 서서 즐겁게 일하는 보람을 누리면서 살림을 기쁘게 짓도록 북돋우는 배움터나 일터는 우리 사회에 얼마나 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