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앞을 자주 지나치는 관악구 대학동 주민들은, 대학 서열의 상징이라는 이유로 '서울대 정문'을 해체하자고 주장해도 좋을까?
하지율
김희림(경희대·철학 3)씨는 "(박씨 논리대로라면) 자기 사진을 SNS에 올려놓는 사람은 외모지상주의사회의 외모지상주의자인 거냐"고 반문했다. 고준우(고려대·사회학 3)씨도 "자신이 배운 (대학 서열의 문제점에 대한) 지식을 고작 사람들 걸러내는 일에 활용하는 사람은, 배움의 가치에 대해 논할 자격이 없다. '김정일 개XX' 해보라는 극우의 태도와 다를 게 없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이어서 "'명예남성 개XX' 해보라는 게 페미니즘이 아니며, '명문대생 개XX' 해보라는 게 학벌주의 반대운동이 아니며, '자본가 개XX' 해보라는 게 사회주의 운동이 아니며, '호모포비아 개XX' 해보라는 게 젠더운동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다른 의견을 제시한 누리꾼들도 있었다. 안정훈(가명·학력 미기재)씨는 "학력을 적어놓지 않은 채, 타임라인에 글을 쓰면 '좋아요'가 5밖에 안 됐다. 하지만, '서울대' 대나무숲에 글을 올리니 '좋아요'와 '공유'가 대충봐도 대나무숲 평균을 웃돌긴 하더라"며 씁쓸해했다.
우주민(가명·학력 미기재)씨는 "한국 사회에 버젓이 존재하는 대학 서열과 차별 맥락을 보면 (박씨의 주장이) 못 할 말도 아니"라고 했다. 이어서 "명문대 간판을 내건다는 건, 인정하기 싫겠지만 차별을 지속하는데 기여하는 신호를 계속 주고받는 꼴이다. 명문대 이름을 썼다고 모두 차별에 동의하진 않는다며 '일반화하지 말라'고 반발하는 사람들이 있다. 나는 여성학자 정희진의 말을 내 식대로 변형해 '당신 주변의 명문대생들도, 당신처럼 생각하게끔 변화시켜달라'는 말밖에 해줄 말이 없다"고 말했다.
논란이 불거진 뒤 박씨는 누리꾼들에게 미해결 숙제를 남긴 채, 페이스북을 떠났다. 이 숙제는 단순히 박씨 개인이 일으킨 물의로 볼 일은 아니었다. 차라리 그것은 '사람들은 정말 자신의 학력을 SNS에 밝혀서는 안 되는가'라는 정치적이고 윤리적인 문제였다.
페이스북이 과연 '표준이력서'와 같을까?
'학력을 노출시키지 말라'는 박씨의 요구가 기업 입사, 대학 입시 등 서류전형을 겨냥했다면, 비교적 사회적 거부감 없이 수용됐을 가능성이 높다. 이미 보수 정권과 진보 정당 공히 '표준이력서' 사용을 정책 방향으로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표준이력서란 학력, 외모, 성별, 나이 등을 기재하지 않는 이력서를 말한다.
표준이력서는 채용과정에서 성별과 나이 차별을 막고자, 주민등록 번호 맨 앞자리와 뒷자리 첫 번째를 'X'로 가린다. 또한 외모 차별을 막고자 사진을 없앴고 신체(키와 몸무게)에 관한 사항을 적는 칸이 없다. 결정적인 건, 대학 이름을 안 적는다. 대학 서열 때문에 생기는 차별을 막고자 최종학력과 전공만 적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