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당에서 놀던 큰아이가 제비꽃을 한 송이 꺾어서 '꽃고리'를 빚었다. 이 또한 조촐한 '작은 우리 문화' 가운데 하나라고 생각해 봅니다.
최종규
우리 민족은 예부터 여러 잔치 문화를 즐겨 왔다. 어렵고 힘들 때마다 음식을 나누고 즐거움을 나누며 공동체의 결속을 다지던 문화가 바로 잔치였다. (162쪽)젓가락을 쓰는 한·중·일 세 나라 중에서 특히 한국 사람들의 젓가락 사용 기술이 가장 뛰어나다. 그 이유는 쇠젓가락을 사용한다는 데서 찾을 수 있다. (259쪽)예부터 한겨레를 두고 흰옷 입는 겨레라고도 했지만, 흰옷 입은 발자취보다는 춤과 노래를 즐긴 발자취가 훨씬 길다고 느낍니다. 고려나 고구려나 신라나 백제나 가야나 발해나 부여 같은 예전에 입은 옷은 흰옷이 아닌 온갖 빛깔이 고이 어우러진 옷이라고들 해요. 그리고 어느 '나라 이름'으로 있던 삶이었어도 누구나 기쁘게 춤을 추고 노래하면서 삶을 북돋았다고 합니다.
이와 달리 오늘날 우리 삶터를 들여다보면 기쁘게 춤을 추거나 노래하는 모습을 찾아보기 어려워요. 따로 '지역 축제'라는 이름을 붙이지 않는다면 마을놀이나 마당놀이는 거의 자취를 감추어요.
학교에서도 운동회나 무슨 축제를 열지 않으면 마음껏 춤추거나 노래할 만한 자리가 매우 드뭅니다. 아이들은 놀이마당을 누리지 못하고 학교랑 학원에서 시험공부에 너무 바빠요. 이 아이들을 가르치거나 돌보는 어른들도 놀이마당을 제대로 누리지 못하고 고단한 일에만 얽매입니다.
한국인들이 등산복을 애용하는 까닭은 무엇보다 등산을 즐긴다는 데 그 원인이 있지만 실용적인 목적도 크다. 등산복은 기능성 원단으로 만들어 착용감이 편한 데다가 땀이 빨리 마르고 비가 와도 속은 젖지 않기 때문이다. (275쪽)<살맛 나는 한국인의 문화>는 예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사람들 사이에서 흐르던 문화를 짚으면서 우리 사회와 역사를 이야기합니다. 이 이야기를 읽으면서 고개를 끄덕거리기도 하다가, 이 이야기를 한 걸음 더 내디뎌서 새로운 생각으로 끌어올리면 어떠할까 하고 느끼기도 합니다.
이를테면, 이제는 예전과 달리 놀이판도 신명도 추임새도 거의 자취를 감추었다고 할지라도, 조촐하게 새롭게 짓는 놀이판이나 신명이나 추임새를 생각해 볼 만합니다. 마을마다 조그맣게 맺는 두레(협동조합)를 떠올릴 만하고, 뜻이 맞는 여러 사람이 모여서 조그맣게 동아리를 이루는 자리를 떠올릴 만해요. 어느 모로 본다면 녹색당 같은 정당도 틀에 박힌 제도권에서 벗어나서 삶과 살림을 새롭게 가꾸려는 조그마한 몸짓이라 할 수 있습니다.
고흥군 같은 작은 시골을 보더라도 읍내에 '등산옷 가게'가 꽤 많아요. 해마다 새로운 '등산옷 가게'가 몇 군데씩 문을 엽니다. 사람 숫자는 몇만이 안 되는 데에도 옷가게가 자꾸 문을 여니 알쏭합니다만, 그만큼 시골에서도 등산옷을 사랑하는 사람이 많다는 뜻이로구나 하고 느껴요. 그런데 이렇게 눈에 뜨이는 유행 같은 등산옷이 아닌 작은 몸짓을 생각해 보면 어떠할까 싶습니다.
도시를 조용히 떠나서 시골로 가는 사람들 숫자는 '시골을 떠나 도시로 가는 사람'보다 아직 훨씬 적습니다만, 차츰차츰 늘어납니다. 시골에서 조용히 논밭을 지으면서 살림을 짓는 사람이 꾸준히 늘어요. 이들 '새로운 시골사람'은 도시사람을 먹여살릴 만한 농사를 짓지는 못합니다만, 이녁 살림을 건사할 만큼 땅을 가꾸면서 웃음을 짓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