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월시화공단 노동자권리찾기모임 월담과 인권운동사랑방 주최로 15일 오전 안산시의회 대회의실에서 열린 ‘반월시화공단 노동자 인권침해 실태 토론회’에서 명숙 인권운동사랑방 상임활동가가 노동자들의 인권침해 실태와 개선을 위한 제언과 관련 프레젠테이션(PT)을 하고 있다.
박호열
"조회 시간에 갓 고등학교를 졸업하거나 파견 여성들을 모아놓고 욕한다. '야 이 XX 지금 시간이 몇 신데 이제 X들어오고 XX이야.' 욕은 일상이 됐고 익숙한 풍경처럼 모두 아무 말 없이 묵묵히 받아들인다."(**플렉스 파견노동자 증언)"정규직을 미끼로 작업 현장에서도 (몸을) 터치했고 회식 자리에서도 도가 지나칠 정도다. '이 조장은 이만하고, 저 조장은 저만하고' 손 모양을 해 가며 이렇게 떠들고 다니던..."(**제약 노동자 증언)
"남자들의 경우 휴식 시간이나 작업장 이동할 때 수시로 관리자들이 폭행한다. 하복부를 갑자기 때린다든지... 그냥 업무 지시만 하면 되는데, 폭력적인 행동을 같이한다. 여자, 남자 할 것 없이 하는데, 여자가 더 취약하다."(**사업장 노동자 증언)46년 전 전태일은 그의 나이 스물셋에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인간답게 살고 싶다"고 절규하며 분신을 했다. 그 후 대한민국 노동자들의 일상은 나아졌을까?
그렇지 않다. 반월시화공단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노동자들의 인권침해 빈도수는 55.74%였고, 거의 매일 인권침해를 당하고 있다는 비율도 19.7%나 됐다. 전태일은 "내 죽음을 헛되이 하지 말라!"고 했지만, 노동자들의 일상은 여전히 잔혹했다.
노동자 다섯 명 중 한 명, "거의 매일 인권침해 당해" 반월시화공단 노동자의 권리를 찾기 위해 만든 반월시화공단 노동자권리찾기모임 월담(아래 월담)과 인권운동사랑방이 15일 오전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안산시의회 대회의실에서 '반월시화공단 노동자 인권침해 실태 토론회'를 열었다.
이번 토론회는 지난해 10월부터 올해 2월까지 반월시화공단 노동자를 대상으로 인권침해 상황과 해결방안 등에 대해 서면 설문(150명)과 심층면접조사(12명)를 진행하고, 그 결과를 분석한 '반월시화공단 인권침해 실태 보고서'를 발간하고 대안을 모색하기 위해 마련했다.
보고서는 반월시화공단에서 벌어지는 인권침해 양상을 ▲ 일거수일투족 감시·통제 ▲ 폭언·폭행 등 모욕적 폭력 ▲ 잔업·특근 강제 등 노동법상의 기본적 권리 제한 ▲ 부족한 휴게공간과 휴게시간 등 열악한 노동조건 ▲ 불합리한 작업지시 ▲ 따돌림 등의 괴롭힘 ▲ 여자·이주노동자·장애인·비정규직 등 차별 ▲ 성적 괴롭힘 등의 8개의 유형으로 분류했다.
명숙 인권운동사랑방 상임활동가는 '반월시화공단 노동자 인권침해 실태와 개선을 위한 제언' 발제에서 인권침해를 유발하는 원인을 크게 세 가지로 나눴다.
그는 "첫째, 무리한 생산량 달성을 위한 성과주의가 문제"라며 "반월시화공단 입주 업체는 대부분 대기업의 2~3차 협력사로 거래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물량과 납품 기일에 목숨을 걸어야 하는데 그러다 보니 노동자 인권은 등한시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지적했다.
명숙 활동가는 "두 번째는 불법파견과 파견법의 맹점으로 인한 것으로, 독점 대기업 재벌을 정점으로 한 다단계 산업구조에서 대기업이 성장의 단물을 대부분 가져가다 보니 하청업체가 살길은 비정규직 쥐어짜기 뿐"이라며 "여기에 불법파견이 성행하다 보니 회사는 언제든지 노동자를 구할 수 있다는 자신감에 온갖 인권침해를 저지르는 것"이라고 말했다.
세 번째 원인에 대해 그는 "인권과 분리된 공단의 가부장적 문화에 기인한다"며 "'공장 안에 들어오면 다른 세상이다'라는 노동자의 말처럼 반월시화공단은 전근대적이고 권위적이고 가부장적인 질서와 문화가 통용되는 공간으로 생활공간과 완벽히 분리된 데다 노동자를 위한 편의시설도 없어, '공단에서 인간적 대우를 요구하는 건 사치'라는 의식을 주입하고 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불안정한 노동환경과 가부장제 문화... '노동 인권 사각지대' 또한 토론회에서는 이 같은 인권침해의 배경에 기업주와 고용노동부, 한국산업단지공단 등 책임 있는 주체의 직무유기와 지역사회의 정책 결정과 집행을 담당하는 시의회와 지자체의 외면도 한몫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이와 관련해, 토론회 참가자들은 고용노동부가 ▲ 인권침해 예방을 위한 가이드라인 작성 ▲ 인권침해를 예방하는 정기적인 근로감독과 특별근로감독 시행 ▲ 인권 전문가 등 시민사회가 참여하는 인권침해 방지 특별기구 설치 등의 구제와 예방 조치를 병행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지자체의 역할로는 ▲ 지자체장의 '치적 쌓기용'이 아닌 실효성 있는 '노동인권조례'가 제정돼 현실에서 실질적으로 작동할 수 있도록 해야 하며 ▲ 지자체가 포괄하고 있는 공공부문에서부터 노동인권조례를 적용해 민간기업으로 확산할 수 있도록 모범을 보여야 한다고 제안했다.
한국산업단지공단의 경우 ▲ 공단 입주 업체의 인권교육 의무와 위반 시 불이익을 주고 ▲ 현재 추진되고 있는 공단 구조 고도화 사업을 통해 노동자들을 위한 쉼터와 휴게공간 등을 만드는 등 '인권 친화적 공단'을 조성해야 한다고 제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