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걷이를 마치고 길에 널어 햇볕에 말리는 나락. 햇볕을 먹고 자란 나락을 예부터 햇볕에 말렸고, 우리는 쌀밥뿐 아니라 햇볕을 함께 먹습니다.
최종규
밥을 맛나게 먹은 아이들은 새롭게 기운을 내면서 즐겁게 놉니다. "오늘 밥은 무엇이야?" 하고 묻는 아이들한테 "오늘 밥은 맛있는 밥."이라 말하거나 "오늘 밥은 즐거운 밥."이라 말하거나 "오늘 밥은 신나는 밥."이라 말합니다. 밥상맡에서 마지막 밥풀까지 삭삭 훑어먹으면서 "오늘도 고맙게 잘 먹었구나. 이 고마운 기운을 몸에 기쁘게 받아들여서 활짝 웃고 뛰놀자." 하고 이야기합니다.
밥심으로 놀고, 밥심으로 일하지요. 고기를 더 먹든 풀을 넉넉히 누리든 모두 밥입니다. 빵을 먹든 떡을 먹든 우리는 언제나 '밥을 먹는다'고 말해요. 몸을 살리는 밥이요, 마음을 새롭게 일으키는 바탕이 되는 밥입니다.
경제발전이라는 틀에서는 논이 아닌 공장이나 관광단지나 발전소나 고속도로나 골프장이나 아파트가 들어서야 돈이 된다고 하지만, 삶과 살림이라는 눈길로 바라본다면, 논을 둘러싸고 조촐한 마을하고 아름드리 짙푸른 숲이 있을 적에 아름답습니다.
잘 생각해 보면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어요. 돈이 있어도 쌀이 없으면 밥을 못 먹어요. 돈이 있어도 숲이 없고 냇물이 망가져서 바람이 깨끗하지 못하면, 사람들이 다 아프지요. 돈이 있고 자동차가 있고 고속도로가 있어도, 맑은 바람과 따스한 햇볕과 싱그러운 냇물과 빗물이 있는 터전이 없으면, 삶이 삶답기 어렵습니다.
중앙정부와 지역정부에서 정치와 행정을 맡은 일꾼들이, 그러니까 우리 삶을 아름답게 북돋우는 일을 맡은 '심부름꾼'들이 <쌀은 주권이다>를 함께 읽으면서 한손에는 호미나 쟁기나 괭이를 쥘 수 있기를 빕니다. 손수 흙을 일구어 보지 않는다면 흙과 쌀과 풀과 숲과 나무와 냇물과 바람과 햇볕이 우리 삶을 어떻게 북돋우는가를 제대로 알기 어려울 테니까요.
쌀은 주권이다
윤석원 지음,
콩나물시루, 2016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댓글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기사를 스크랩했습니다.
스크랩 페이지로 이동 하시겠습니까?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