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와인 브랜드 홍보를 맡고 있는 유병찬씨.
그는 직장에서 은퇴했지만 쉴 생각이 없었다. 뭔가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고령화 시대를 대비하기 위해서라기보다는 다른 목표가 있었다. 첫째, 돈을 벌고 싶었다. 평생 월급쟁이로 돈을 꼬박꼬박 타서 쓰기만 했지, 벌지는 못했다. 돈을 번다는 것이 무엇일까? 그게 궁금했다.
둘째, 금융권처럼 편안한 직업을 찾고 싶었다. 그러던 차에 막걸리가 눈에 들어왔다. 은행원들은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일하지만, 은행의 금리는 24시간 365일 쉬지 않고 일한다. 돈이 돈을 번다. 그래서 은행업은 비싼 임대료를 내고, 임금도 높게 줄 수 있다.
그가 보기에 막걸리 산업도 은행 일을 닮아 있다. 술을 담가 두면 그 뒤에는 효모가 사람 대신 24시간 일한다. 막걸리는 상할 수 있지만, 증류하면 소주가 되고 초산 발효하면 식초가 된다. 돈이 상하지 않듯이 술도 상하지 않는 길이 있다. 게다가 양조장 일은 널널하다. 그가 해왔던 일들에 견주면 노동 강도가 결코 세지 않다. 그래서 노후에 괜찮은 사업이라고 판단했다.
셋째, 좋아하는 분야에서 일을 찾고 싶었다. 그는 젊은 날부터 술을 굉장히 좋아했다. 금융권에 일하는 사람들은 술이 세다. 돈을 예치하는 것도 빌려주는 것도 모두 영업이다. 영업의 생명은 만남이다. 가장 빨리 친해지려면 술자리를 함께하는 것이다. 그는 술자리를 마다지 않았고, 술을 이겨냈다. 그가 속한 금융그룹 안에서 술이 제일 센 사람으로 통했다. 술을 이기는 법도 터득했다. 빈속에 술을 마시지 않고 안주를 적절하게 먹고, 많이 마시면 3일 이상 술을 마시지 않았고, 규칙적으로 운동하면서 몸을 다졌다.
넷째, 위험 부담이 적고 손실이 적은 일부터 시작하고 싶었다. 막걸리를 배울 무렵에 우연히 술 박람회장에 갔다가, 그리스 와인 부스를 방문하게 됐다. 그곳에서 그리스인을 만났고, 그리스 와인을 홍보해보지 않겠냐는 제안을 받았다. 서너 달 동안 사업계획서를 이메일로 주고받은 뒤에 계약이 이뤄졌다. 그를 고용한 곳은 그리스 와인업계의 리더이자, 1879년에 창업한 그리스 와인 회사 부따리와 그 형제 회사 끼리야니다. 그에게 연봉을 지급하는 곳은 유럽연합(EU)이다. 그리스 와인 회사가 유럽연합으로부터 홍보 마케팅 비용을 받아 그에게 활동비를 지불한다. 그는 그리스 와인 브랜드 홍보 대사, 유병찬이다.
포도주에 물 섞어 즐겼던 그리스인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