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배반 투표는 이제 그만

[주장] 내 상황에 맞는 '계층 투표'를 합시다

등록 2016.03.14 11:34수정 2016.03.14 1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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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의 계절이다. 진보진영을 지지하는 처지에 선거의 계절이 다가오면 관심도 커지지만 실망과 분노도 커간다. 기대와 투표 결과의 불일치 때문이다. 왜 많은 사람은 계층 투표를 하지 않을까? 정치가 내 생활을 쥐고 흔드는데, 왜 칼자루를 내 삶을 '아작'내겠다고 덤비는 자들에게 넘겨주려고 하는 걸까?

계층을 어떤 방식으로 구분하고 나를 어디쯤 끼워 넣을지, 좋은 투표란 무엇이며 정치에 대한 나의 책임은 투표에서 그치지 않고 어디까지 나아가야 하는지. 파고들면 끝이 없다. 하지만 간편하게 접근해보자. 비교적 여당은 보수고 야당은 진보다. 지키려는 자와 바꾸려는 자로 대표된다. 만약 나의 현재 상황이 만족스럽다면 여당을, 불만족스러워 바꾸고 싶다면 야당을 밀어주는 게 맞다.

그런데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분명히 현실을 못마땅해하며 비난하는 이들이 과반수인데 투표함을 열어보면 그 수치가 무색하게 여당표가 많다. 도대체 왜? 이유를 모르겠다. 그래서 답답하고 화가 난다. 오랫동안 이 문제에 대해 고민도 해 보고 공부도 했지만 아직 뾰족한 답을 찾지는 못했다. 그러나 어느 날 문득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이게 꼭 발모제 광고를 외면하는 탈모인들 같구나.'

계급배반 투표, 탈모인과 닮았구나

엉뚱한 소리라 좀 풀어서 이야기해보겠다.

대한민국에서 멋지게 살아가는 나를 비롯한 수백 만의 탈모인이 가장 믿지 않는 말이 있다. '머리카락이 다시 날 수 있다'는 말이다. 먹는 약, 뿌리는 약, 한약, 봉침에 온갖 기구까지. 온갖 곳에서 온갖 것을 들이대며 우리는 진짜니 믿으라고 아무리 말을 해도 탈모인들은 그 말을 신뢰하지 않는다. 왜? 이미 나름대로 온갖 방법을 써봤지만 돈과 시간만 들어갔지(혹은 버렸지) 머리카락이 전처럼 풍성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나마 공신력이 있는 방법은 병원에서 탈모 증상에 따라 약을 처방받아 장기 복용하는 것이다. 다른 방법보다 가성비가 얼마나 높은지에 대한 평가는 사람에 따라 다르다. 하지만 어쨌든 국가에서 인정한 방법이라는 점에서 신뢰도는 가장 높다는 게 중론이다. 하지만 모두가 이 최선의 방법을 선택하지는 않는다. 왜일까? 그리고 만약, 탈모가 시작되었을 때 바로 병원을 찾고 약을 먹기 시작했다면 어떻게 달라졌을까?

보통 머리카락이 평소보다 줄어들어도 즉, 탈모가 시작된다고 해도 바로 병원에 가지는 않는다. 먼저 손쉬운 민간요법을 찾아본다. 그리고 남자들은 아버지, 할아버지의 모발 상태를 다시 떠올려본다. 그 뒤의 선택은 둘 중 하나다. 민간요법을 시작하거나 유전자의 힘 앞에서 저항을 포기한다.


내가 보기에 계층 투표가 현실 정치에서 이루어지지 않는 까닭도 이와 같은 맥락이다. 최초의 정치 행위 혹은 투표할 때 내 생활과 정치를 연결 짓는 노력이 부족하다. 그저 부모님 따라서, 술친구 연설을 좇아, 이길 만한 후보를 골라서, 이름 아는 후보를 찍는다. 그건 내 투표가 아니다.

따라서 내 생활과 직접 연결할 만한 정책이나 변화를 정치에서 찾기 어렵다. 간단히 말해 정치가 '딴 나라 이야기'가 되는 순간이다. 이 괴리에서부터 시작된 거리감과 그 거리감이 커져가는 거듭된 선거에서 피로가 되어 쌓인다. 피로가 우리를 정치에 기대지 못하게 한다. 

이런 상황이니 정치와 생활을 연결할 연결고리를 쉽게 못 찾는다. 정치인들은 다 협잡꾼이라고 비난은 하지만 정작 내 생활 어떤 부분을 정치로 바꿀 수 있는지 알지 못한다. 하지만 정치는 교과서에 있는 게 아니라 내 일터와 가정에 숨 쉬고 있다. 무려 내 생활을 일보 전진하게 할 수 있는 게 정치다. 

가장 명확한 변화는 내 계층에 맞게 투표해야

자영업자이다 보니 더불어민주당의 '을지로위원회'의 활동이나 정의당의 '국민월급 300백 만 원'에 귀를 쫑긋거린다. 직접 혜택을 받지는 못했지만 누군가는 갑에게 당한 억울함을 꽤나 해소했다는 이야기는 들어왔고 많은 변화를 가져올 것을 믿는다.

물론 이런 정치 활동으로 몇 년 만에 불황을 걷어내고 호황의 기쁨을 누리게 할 수는 없다. 그래 주었으면 오죽 좋을까마는 그건 사기다. 세계 경제 틈바구니의 대한민국 경제이고 대한민국은 1조4000억 달러가 넘는 GDP를 자랑하는 거대 경제 국가이다. 악착같은 노력이라도 변화는 수십 년에 걸쳐 느리게 올 것이다.

하지만 국회의원들이 내 임대료와 월세는 당장 챙겨 줄 수는 있다. 2년마다 하는 재계약시 임대료 상한선을 그어줄 수 있다. 법으로 못 박으면 되고 그게 아니라면 임대료 보조금을 지급해 줄 수도 있다. 지금도 대기업 법인세는 낮춰주고 전기료 할인과 같은 금전 지원을 해주고 있다. 그렇다면 영세 자영업자도 정치를 통해 수십만 원의 보조를 받지 못할 리 없잖은가.

단, 선거를 잘했을 때 말이다.

지금까지 정치라는 옷의 첫 단추를 잘못 끼웠고 내 생활이 정치 때문에 극적으로 변화하는 좋은 경험을 하지 못했다. 그래서 정치는 가끔 먹는 술상에는 오르지만 세 끼 밥상의 영역으로 끌어오지 못하는 부분이 많았다. 그렇다고 언제까지고 술상 위에 오른 정치인 험담으로 내 권리를 낭비할 수는 없다.

민주주의. 나 하나의 의지와 권한이 1/n의 현실로 내게 살갑게 다가오는 세상은 아니다. 하지만 내가 아니면 누구도 나의 생활을 바꿔주지 않는 것 또한 엄연한 현실이다. 나를 살리자면 내가 나서야 한다. 그리고 그때 그나마 가장 명확한 피드백을 받을 수 있는 선택 기준은 학연도, 지역도, 출신도, 성별도 아닌 나의 계층, 나의 월급이다.
덧붙이는 글 재 블로그 http://cirang.tistory.com/ 에도 게재했습니다.
#총선 #투표 #계층투표 #자기배반투표 #임대료상한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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