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그림
요시토모 나라
소설책에 나오는 아이네 아버지는 빗돌을 깎는 일을 한다고 합니다. 이 아이네 아버지는 아르헨티나 할머니네 집에 깃들면서 '곁님 무덤에 세울 빗돌'을 '그냥 여느 빗돌'로 깎지 않고 '돌고래 모습 빗돌'로 깎았다고 해요. 소설책 주인공 아이는 돌고래 빗돌을 몹시 마음에 들어 합니다. 그리고 속으로 생각하지요. 앞으로 이 아이가 스스로 헤치거나 걸어갈 길을 스스로 새롭게 짓겠노라고.
얼추 100쪽이 안 되는 짤막한 소설인 <아르헨티나 할머니>인데, 청소년이 곁에 있는 살가운 사람을 죽음으로 떠나 보내야 하는 삶을 차분하면서도 속깊이 다루는구나 하고 느낍니다. 이러면서 우리가 스스로 지을 살림살이를 어떻게 가다듬을 적에 이 삶에 기쁨을 손수 일으킬 만한가 하는 대목도 짚는구나 하고 느껴요.
너도 나도 우리도 모두 죽음으로 흔들릴 수 없습니다. 너도 나도 우리도 모두 흔들릴 수 없는 삶을 짓습니다. 흔들려야 하는 일이 있다면 흔들리되, 다시 일어서면 됩니다. 흔들리다가 그만 고꾸라지거나 자빠지거나 쓰러져야 한다면, 씩씩하게 새로 일어서면 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우리 삶을 누리고 싶거든요.
마음으로 다가서는 이웃이 반갑고, 마음으로 손을 맞잡는 동무가 사랑스럽습니다. 그냥저냥 한집에서 밥상을 마주하는 사이로 지낼 때에는 서로 아무 기쁨이 없으리라 느낍니다. 아이와 어버이 사이에서, 나와 이웃 사이에서, 동무와 동무 사이에서, 마음으로 아끼고 보듬을 수 있는 숨결이 된다면 얼마나 고울까 하고 생각해 봅니다.
손수 짓는 고운 살림살이를 생각하면서 자그마한 소설책을 덮습니다. 새근새근 잠든 아이들 곁에 다가서서 이마를 쓸어넘기고 이불깃을 새로 여밉니다. 아이들은 자다가도 어버이 손길을 느꼈는지 길게 기지개를 켜고 하품을 한 뒤 입맛을 짭짭 다시고는 다시 꿈나라로 깊이 빠져듭니다.
아르헨티나 할머니
요시모토 바나나 지음, 나라 요시토모 그림, 김난주 옮김,
민음사,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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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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