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짐만 따로 싣는 트레일러를 달고 있다.
이규봉
다음 날 이른 아침 잠시 호수주변을 산책하다 진풍경을 목격했다. 두 마리의 검은 개가 주인이 들어간 가게 밖에서 완전 부동자세로 나란히 꼼짝 않고 대기하고 있는 것이다. 어찌 훈련을 저리 잘 시켜놓았는지 놀라운 한편 그 훈련이 얼마나 고되었을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저 개가 사람이라면 바람직한 일일까?
언제 또 올지 모르는 퀸스타운에서 아름다운 추억만 갖고 테 아나우로 떠났다. 버스는 23인승으로 제 시간에 왔다. 빈 자리가 서너 개 있는 것으로 보아 내가 예약한 이후로 아무도 안 한 것 같다. 버스기사가 친절하기도 하다. 버스 뒤에는 짐을 싣는 트레일러를 달고 있어 배낭은 모두 트레일러에 실었다.
버스는 11시에 공항 안으로 들어간다. 여기서 또 손님을 태웠다. 와카티푸 호수를 끼고 한참을 가더니 호수는 사라지고 멀리 높은 산과 가까이 구릉이 보이며 곳곳에 소와 양이 풀을 뜯고 있다. 여기 가축들을 보면 평화로움을 느낀다. 그들은 공장에서 생명체를 마구잡이로 찍어내다시피 하는 그러한 취급을 받고 있지 않다. 이 넓은 들판 위에 많지 않은 수가 있으니 서로 경쟁할 필요도 없어 보인다.
경쟁만 하는 사회는 차라리 없는 것보다 못하다. 경쟁이 중요하긴 하지만 상부상조하지 않는 경쟁은 인간성을 말살시킬 뿐이다. 차라리 경쟁이 없어 좀 부족하더라도 천천히 사는 것이 물자가 풍부한 곳에 살면서 시간의 여유도 없고 빈곤을 느끼며 사는 것보다 좋지 않은가?
1시 반쯤 되어 테 아나우의 트레킹 안내센터에 도착했다. 비가 온다. 버스는 모든 승객을 각자의 숙소 앞까지 데려다 준다. 킹스게이트 호텔(Kingsgate Hotel)에 짐을 풀었다. 늦게 예약을 해서인지 이곳 역시 싼 곳을 찾을 수 없어 이 호텔을 예약했다. 하룻밤에 17만 원인 만큼 시설은 깔끔하고 아늑했다. 안내센터에 가니 트레킹하는 내내 비가 온다고 일러준다. 그것도 강한 비(heavy rain)라고. 기상예보가 그렇게 나왔다고 한다. 맥이 빠진다. 예전 루트번 트랙을 걸을 때도 매일같이 비가 왔는데, 또 비야? 할 수 없지. 비에 철저히 대비할 수밖에.
만일에 대비해 가져온 1회용 우비를 점검해 보았더니 한 귀퉁이가 찢어져 있었다. 그것을 붙이려고 테이프를 사려 했는데 테이프 값이 5달러이다. 즉 4천 원 정도로 우비 값 2천 원의 두 배나 된다. 찢어진 곳 수선하고자 구입한 비용의 두 배를 들여 수선하다니! 배보다 배꼽이 이렇게 커도 되나? 하지만 그렇게 했다. 아내의 옷이 방수에 부실해서 방수되는 옷을 샀다. 비는 줄기차게 온다.
산에 한 번 들어가면 그곳에선 사 먹을 수 없다. 3박 4일간 아홉 끼 될 식량을 모두 준비해 가야 한다. 그래서 필히 무게와 부피가 작은 것을 우선 고려해야 한다. 주식은 모두 한국에서 컵라면이나 컵밥 등 가공식품만 준비했고 여기서 마른 과일을 조금 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