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리 끝 독침을 곧추세운 전갈먹잇감을 찾아 사방을 더듬거렸다.
김경수
정오를 넘어서자 태양이 머금은 열기를 거세게 뿜어댔다. 후끈 달궈진 지표면도 쉴 새 없이 지열을 토해냈다. 볕을 가릴 그늘은 애당초 기대할 수 없었다. 잡목들 사이로 날카로운 가시가 돋친 아프리카 아카시아가 듬성듬성 자라나 있었다. 모래 바닥에는 생존을 위한 미물들의 몸부림이 여기저기 목격됐다. 메뚜기들이 뒤엉켜 싸우다 이긴 녀석이 패자의 몸통을 뜯어 먹었다. 전갈은 꼬리 끝 독침을 곧추세우고 먹잇감을 찾아 사방을 더듬거렸다.
레이스 3일째가 되었지만 아직도 피쉬 리버 캐니언(Fish River Canyon) 대협곡의 언저리를 벗어나지 못했다. 허벅지가 대바늘만한 가시에 찔릴 때 지르는 외마디 비명소리로 내가 살아 있다는 것을 확인시켜 주었다. 사막레이스에서 선수들이 가장 힘든 것은 배낭의 무게다. 배낭의 하중은 허리와 하체로 이어지고, 발바닥은 물집이 터지면서 만신창이가 된다. 고통을 견뎌내지 못한 선수는 자신의 식량을 모래 속에 버리기도 한다. 하지만 그 무거운 배낭을 짊어지고 캠프에 들어오면 풍성한 만찬을 즐길 수 있다.
2009년 5월, 시각장애인 송경태씨와 나는 지구상 두 번째로 큰 대협곡인 남아프리카 나미비아의 피쉬 리버 캐니언을 출발해서 나미브사막 거쳐 대서양 해안도시 루데리츠(Lüderitz) 까지 5박 7일 동안 260km을 달리기 위해 빈트후크(Windhoek)에 도착했다. 23개국에서 모여든 207명의 선수들은 흡사 스파르타 전사의 모습이었다. 협곡 주변은 오랜 세월 풍화작용이 빚어진 기암괴석들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졌다. 경기가 시작되자 선수들은 괴성을 지르며 날선 돌들이 가득한 급경사의 내리막길을 따라 미끄러지며 내려갔다. 조금만 발을 헛디뎌도 대형사고로 이어질 수 있지만 선수들은 아랑곳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