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총선 서울 강동갑 지역구에 출마를 선언한 진선미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산뜻하고 색다른 방법으로 제대로 싸우고 싶은데 아직 부족하다"라며 "끝나지 않은 정치적 실험을 계속 하고 싶다. 20대 국회에서 열심히 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유성호
다음은 8일 만난 진 의원과 나눈 일문일답 전문이다.
"국정원 대선 개입 그렇게 싸웠는데 결국 국정원 권한 강화...안타깝다"- 9시간 16분 동안 필리버스터를 했다. 마친 후 소감으로 '무거운 마음이 든다'고 했는데, 지금도 같은 마음인가. "그렇다. 필리버스터는 소극적 수단이다. 테러방지법을 통과시키는 것을 완전히 막을 수는 없고, 그 법이 얼마나 부당한지 무엇이 문제인지 알리며 지연시키는 방책밖에 안 된다. 국정원의 대선 개입 범죄 행위에 대해 힘들게 싸워왔는데 결국 19대 국회 말에 국정원이 득세하고 권한이 강화되는 상황을 목도해야 하는 현실이 너무 안타까웠다. 또 많은 독자층, 시청자를 확보하고 있는 대표적인 언론들이 이 문제를 외면했고, 언로가 막혀있음을 실감했다.
한편으로 재확인한 게, 국민은 민주정부 10년을 통해서 의식이 성숙했고 사람들은 과거로 다시 돌아가지 않는다는 것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이미 많은 걸 알고 준비가 돼 있구나, 우리는 그 뚜껑을 열어주는 역할을 하면 되는구나…. 필리버스터가 이렇게 주목받으리라고는 아무도 생각 못했다. 정치인은 가장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도 희망을 말할 수 있어야 하며 책임질 수 있어야 하는 거 같다. 많은 분들의 응원을 받을 자격이 있나 싶지만 그만큼 정치인들이 더 고민해야 하는구나 생각한다.
19대 비례대표 신청할 때 공모기간 내내 이틀을 꼬박 새우면서 내 삶을 정리하고 어떤 의미로 정치를 시작하는지 고민하면서 카타르시스를 느꼈다. 이번 필리버스터 때도 그랬다. 지난 4년의 의정활동 내내 매순간 버거웠다. 할 수 있는 한계를 넘어가는 느낌이었다. 그래서 뒤를 정리하는 게 어려웠고 외면하고도 싶었다. 그런데 필리버스터를 기다리는 시간, 준비하는 시간 동안 지난 4년을 돌아보고 정리하게 됐다. 9시간 16분 동안 참 많은 생각들이 났다."
- 결국 테러방지법은 통과됐다. 정부여당은 여기서 멈추지 않고 '사이버테러방지법' 통과에 열을 올리고 있다. 어떻게 보나."사이버테러방지법은 쉽게 말해 네이버·다음 등 모든 민간사이트를 국정원에서 직접 관리하고 들여다보겠다는 법이다. 국정원이 절대적인 신뢰를 받아도, 법안 자체에 인권침해 요소가 많아 통과시키기 어려운 법이다.
새누리당 정권에서 대선개입, 간첩조작 등 국정원 비리가 끊임없이 터져 나왔다. 나라의 기밀을 관리하는 기관이 이렇게까지 허술하고 신뢰가 없어서야 어떻게 안보를 지킬 것인가 진짜 걱정이다. 새누리당과 정부는 대체 지금 국정원의 꼴을 보고도 사이버테러방지법을 통과시키자고 할 수 있는지 진짜 답답하다. 새누리당의 탈법적 직권상정이 계속될 것으로 예상돼 필리버스터 때도 강하게 언급한 것이다."
- 더불어민주당의 필리버스터 중단 결정, 아쉽지는 않았나."아쉬움은 많다. 그런데 중요한 결정마다 이런 일이 4년 내내 이어져 왔다. 누군가는 쭉 밀고 갔어야 한다고 하고 누군가는 중단했어야 한다고 하고. 지도부에만 책임지울 문제는 아니다.
다만 우리는 너무 허약한 구조 속에 있다. 뒷배가 든든해야 앞으로 밀고 갈 수 있는데 우리는 뒷배가 든든해 본 적이 없다. 안팎으로 서로가 서로를, 밖에서 누군가가, 지지자가 우리를, 이런 식으로 공격받는다는 느낌으로 지낸다. 든든한 지지자와 서로에게 총질하지 않는 동료…, 그런 뒷배가 필요하다.
사람이 자신의 컨디션에 따라 대응도 달라지지 않나. 그런데 우리 당은 최상의 컨디션이었던 적이 없다. 그래서 당 내에서도 누군가 어떤 말을 하면 그대로 들리지 않고 날 세워 대응하게 되는 거다. 우리 당 의원들에게 컨디션을 회복할 5분의 휴식을 주고 싶다. 그래서 원내대책회의 때 비타민도 나눠주고 하는 거다. 잠시라도 웃었으면 좋겠어서."
- 당의 매우 고질적인 문제다. 해결할 수 있을까. "이것 때문에 재선을 고민한 것이기도 하다. 19대 국회 때는 내가 갖는 설득력이 약했다. 비례대표고 초선이고. 그런 경력들이 스스로를 순응하게 만들기도 했고 문제제기 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20대 국회에 입성하면 재선이 되는 거다. 지난 4년 동안 치열하게 고민하고, 현장에서 겪은 성공과 실패의 경험을 통해 내 비전, 정치적 발언에 힘이 실릴 수 있다. 이를 통해 당의 고질적 병폐를 없애고 싶다.
우리 당에 참으로 훌륭한 의원들이 많다. 그러나 왜곡된 언로를 통해 동료 의원들은 바보 같고 부패하고 나약한 사람들로 계속 비춰졌다. 국민들이 우리 당 의원들을 재발견한 것, 필리버스터가 의미있다고 하는 지점이 여기에 있다. 우리 스스로 자긍심을 갖게 되면 서로를 할퀴었던 상처도 자연스럽게 아물 수 있다. 서로 신뢰를 쌓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데 기여하고 있다. 잘할 수 있을 거 같다."
"우리 당 의원들의 재발견, 필리버스터 의미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