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이저수염을 기른 인도 노인이 정물처럼 앉아 있는 다르줄라 짜이 집
송성영
카이저수염을 기른 인도 노인이 정물처럼 앉아 있는 짜이 집에서 짜이 한잔으로 잠시 여유를 부리며 내일 일정을 떠올렸다. 인도에서 90일을 넘기기 전에 네팔로 들어갔다가 나와야 한다.
게스트하우스 주인의 말에 의하면 다르줄라에서 10시간 거리의 반밧사라는 곳에 네팔로 들어갈 수 있는 출입국 사무소가 있다고 한다. 내일 이른 아침에 반밧사로 떠나는 차편을 알아보기 위해 지프차가 줄지어 서 있는 곳으로 발길을 옮겼다. 나와 얼굴 생김새가 비슷한 네팔 사람들을 붙잡고 물었다.
"내일 아침에 반밧사로 가려고 합니다. 어디서 버스를 타야 합니까?""택시를 타야 할 것입니다." "몇 시에 출발합니까?"혹시나 싶어 세 명에게 똑같이 물었는데 다들 친절하게 오전 4시와 6시, 같은 시간대를 알려주고 어디서 출발하는지를 상세하게 알려 준다. 네팔 노동자들이 한국에 와서 악덕 기업주나 악덕 식당주인을 만나게 되면 노예 취급 받기 일쑤다. 못된 한국인들이 떠올라 같은 한국인으로서 공연히 죄송한 마음이 들었다. 한 네팔인은 반밧사 가는 택시를 타려면 택시조합에서 티켓을 구입해야 한다며 택시조합 사무실 근처까지 안내했다.
택시 조합 사무실에는 당찬 한국 여성을 닮은 중년의 네팔 여성이 앉아 있었다. 어디서 언제 출발하고, 요금은 얼마나 하고 또 시간은 얼마나 걸리는지 정도의 간단한 영어였지만 그녀는 영어를 전혀 할 줄 몰랐다. 그녀가 잠시 밖으로 나서더니 영어를 구사하는 인도 여성을 데리고 왔다.
인도 여성과의 간단한 대화를 통해 오전 6시에 출발하는 반밧사행 택시 티켓을 구입했다. 값싼 바나나와 함께 다른 과일에 비해 비교적 값이 비싼 망고를 여러 개 사들고 숙소로 돌아왔다. 오늘은 돈 좀 쓰기로 했다. 내 자신에게 투자하기로 했다.
시원하게 쏟아져 나오는 샤워 꼭지를 틀고 샤워를 하면서 묵은 때를 벗겨냈다. 손닿는 곳마다 때가 밀려 나왔다. 땟물에 절은 옷가지를 빨아 선풍기 주변에 널어놓았다. 내가 가지고 있는 옷의 전부인 두 벌을 다 빨았기에 발가벗은 채로 고목나무 자빠지듯 침대에 누웠다. 인도에 와서 처음으로 텔레비전 채널을 돌렸다. 인도 유선 방송도 한국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영화 채널과 음악, 뉴스, 드라마 그리고 수없이 많은 광고 채널을 돌리다가 까무룩 잠들었다.
잠에서 깨어나자 방안에 어둠이 짙게 깔려 있었다. 다르줄라 국경의 밤거리를 둘러보기 위해 밖으로 나섰다. 오후 9시도 채 안됐음에도 거리의 대부분 불빛이 꺼져 있고 몇 군데의 상가에만 불이 들어와 있다. 택시나 버스 정류장 주변에는 몇몇 사람들이 두터운 담요를 어깨에 두르고 상가 처마 밑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있다. 네팔이나 인도 산골 깊숙한 곳에서부터 돈벌이에 나선 일당벌이 노동자들인 듯하다.
낮에는 별로 눈에 띄지 않았던 소와 개들도 일당벌이 노동자들처럼 옹기종기 모여 있다. 국경 지대임에도 불구하고 기관총을 둘러멘 군인들이 전혀 눈에 띄지 않는다. 다만 머리에 포마드 기름을 발라 올백으로 빗어 넘긴 몇몇 청소년들이 번들거리는 눈빛으로 밤거리를 건들거리며 개떼처럼 몰려다니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