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갈리아 사이트 갈무리
메갈리아
강자와 약자의 차별이 엄존하는 사회에서, 약자들은 좀 더 순응적이고 자기 주장을 좀 덜 드러내도록 사회적 압력을 지속적으로 받게 된다. 어려서부터 그렇게 교육을 받고, 주변에서도 그런 식으로 행동하는 게 더 낫다는 신호를 항상 보낸다.
이런 세계에서는 차별이 발생해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뭐가 문제인지조차 인식하지 못하고, 차별의 피해자들도 별다른 저항 없이 '그냥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는 경우가 많다. 실제로는 약자이면서도 강자의 논리를 그대로 받아들이는 이들도 적지 않고, 심지어는 스스로 그 틀 속에 자신을 가두며 벗어나기를 두려워하기도 한다.
이런 측면에서 볼 때, 흔히 말하는 여성혐오에 대해 정면으로 반기를 들고 문제의식을 공유하는 '메갈리아'("여성혐오를 혐오한다"라는 기치를 내걸고 2015년 여름에 등장한 인터넷 커뮤니티)의 출현은 상당히 신선했다.
이전에는 일반 네티즌들이 집단적으로 성차별에 대해 직접 불만을 터뜨리고, 이런 불평등한 말과 행동을 일삼는 상대에 대해 공개적으로 비판을 가하는 걸 그리 자주 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런 활동 자체가 어떤 변화의 상징처럼 느껴졌고, 일종의 혐오할 권리가 더 이상 남성들만의 전유물이 아니란 걸 보여주는 사건이었다.
원래 상처를 받은 사람은 잘 기억해도 정작 상처를 준 이는 금방 잊어버리듯이, 강자에 속해 있었던 사람은 자기가 누리는 게 특권인지도 모르고 살아간다. 어떤 문제가 발생했을 때 그것이 성별과는 전혀 상관없는 일임에도 괜히 여성혐오를 드러내는 이들은 그게 잘못된 행태인지도 인식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이에 대해서 곧장 문제를 지적하고 항의하는 건 어쨌든 의미가 있으며 중요한 변화다. 줄곧 '무감각의 세계'에서만 살다가 이젠 '저항을 인식하고 자극을 받는 단계'로 진입하는 남성들의 모습도 일부 볼 수 있었다.
언론의 호들갑, 하지만 불안한 요소들지난 몇 년간 각종 분란을 일으키면서 '일베'(일간베스트 저장소)는 이미 '여성혐오의 대명사'로 불렸다. 성격상 이의 대척점에 서 있는 것처럼 보인 메갈리아 역시 (일베가 순식간에 주목을 받았을 때처럼) 언론의 야단법석과 몇몇 호사가들 덕분에 많은 사람의 입에 오르내리기 시작했다.
요즘 대놓고 '성차별을 해야 한다'라고 말하는 인간은 거의 없기 때문에, 대부분 언론은 기본적으로 평등에 바탕을 둔 메갈리아의 활동을 호의적으로 보도한 편이다. 그중에는 좀 과하다 싶을 정도로 찬양 일색의 기사도 있었고, 이게 메갈리아 이용자들에게 그리 좋지 못한 영향을 미치기도 했던 것 같다.
여기서부터 메갈리아의 취약한 부분들에 대해 구체적으로 얘기해 볼 텐데, 우선 한국이 '분노사회'라는 걸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겠다. 어느 나라나 마찬가지겠지만 대한민국에도 여러 가지 문제가 있고, 그중 정말 심각한 게 바로 '일상적으로 팽배한 분노'다.
우리 사회에서는 어딜 가나 분노가 흘러넘친다. 많은 사람이 늘 스트레스에 찌들어 있다. 또한 과중한 노동 시간에, 비합리적인 경제환경 및 양극화, 집단주의와 획일성, 이념적 흑백논리, 종교의 타락과 교육의 실패 등 이런 것들이 우리 주변을 장악하고 있다.
그래서 '헬조선'이라는 말이 나왔다. 사람들의 분노가 자기 자신을 향했을 때 자기비하와 자살로 이어지는 한편 외부로 향하면 '혐오'와 '묻지 마 범죄'를 불러오기도 한다. 분노사회 구성원들의 혐오는 단순히 '싫어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그저 누구 하나가 이 혐오 기제에 걸려들기만 하면, 자신과 별로 관련이 없는 문제인데도 극도의 공격성을 드러낸다. 평소와 다름없이 가만있다가도 어떤 건수가 생기기만 하면 순간적으로 돌변하고,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에게도 온갖 욕설과 비난을 마구 쏟아낸다. 포기할 게 너무나 많은 '헬조선'에서 욕구불만은 분노로 쌓이고, 해소할 길 없는 분노가 일상을 지배하며 곳곳에서 갑작스럽게 폭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