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욱, 자유공원, 23.5 x 105cm, archival pigment print, 1995.
이영욱
맥아더의 목을 쳐버리거나, 충혼탑의 글귀를 보이지 않도록 처리해버린다거나 하는 비판과 느닷없는 안마시술소나 지저분하고 전혀 '자유'스럽지 않은 비둘기집을 집어 넣어버리는 방식으로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전하는 스토리텔링이다.
처음 이 공원의 이름이 '만국공원'이었다가 왜 '자유''공원으로 바뀌었는지에 대한 의문은 왜 1990년대 이후 민족자주 진영의 진보운동가들이 맥아더 동상을 철거하려 했는지와도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사진가가 사진으로 맥아더 동상을 죽여버렸지만, 그것이 그렇다고 민족자주 진영이 시도한 물리적 동상 파괴에 대한 옹호로 보이지는 않는다. 그는 맥아더를 통해 자유냐 반미냐를 외치는 것이 아니라 신화냐 실재냐를 고민하기 때문이다.
다음 작업은 1998년의<대상과 침묵의 접촉>이다. 전작에서 출발한 신화에 대한 고민이 거시사의 해석이었다면,<대상과 침묵의 접촉>은 미시적 일상사의 해석이다. 이 점에서 이영욱은 롤랑 바르트의 전사다.
바르트에 의하면 세상은 '일정한 구조에 의해 형성되고, 그 구조는 특정 의미를 지니는 기호'로 이뤄져 있는데, 사람들은 그 기호에 종속돼 그 안에서 발생한 어떤 제도나 현상을 마치 자연스럽거나 합리적이거나 심지어는 옳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신화일 뿐 보편적인 것이라 할 수 없음에도 사람들은 그 신화에 함몰돼 어떤 것이 옳은지 싸운다. 나아가 그 옳지 않은 것은 처단해야 한다고 싸운다. 목숨 걸고 싸운다. 어리석은 일이다. 하나의 해석만을 기독교 성경 바이블처럼 받드는 어리석은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