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겉그림
문학의전당
마른 땅이 꿈틀거리는 아침 / 거제도를 펼치자 / 붉은 소망 하나 솟아오른다 / 툰트라에서 몸부림치던 핏덩어리 / 요란한 어둠을 뚫는 동안 (거제도 해맞이)
거제시 연초에서 태어나 부산에서 초등학교 교사로 지낸다고 하는 정경미 님이 빚은 시집 <거제도 시편>(문학의전당, 2013)을 읽으면서 봄 날씨를 새삼스레 헤아립니다. 나는 바람을 읽으면서 날씨랑 철을 느껴요. 날씨를 살피면서 날씨하고 철이 어떻게 흐르는가를 생각합니다.
날씨를 알리는 방송이 아니라 바람을 보고 듣고 맡으면서 날씨하고 철을 헤아립니다. 모르긴 몰라도 예전에는 누구나 바람결을 살피면서 하루 날씨를 읽고, 이레나 달포 날씨를 헤아렸지 싶습니다. 왜냐하면 예전에는 신문도 방송도 책도 없이 오직 우리 몸으로 날과 달과 철을 알아야 했거든요.
시골마을 할매하고 할배는 흙을 읽습니다. 늘 흙을 만지고 살았으니 흙만 보면 어떤 씨앗을 심을 만한지 알 수 있습니다. 농협에서 심으라고 하기에 잘 되는 씨앗이 아니라, 마을마다 바람도 볕도 물도 다르니, 마을마다 살아온 결에 맞추어 흙을 살피면 어떤 씨앗이 잘 자랄 만한가를 저마다 알 수 있어요.
글을 많이 읽은 사람은 글을 읽으면서 글쓴이 마음을 읽기도 하듯이, 시골지기는 흙을 읽으면서 흙이 어떠한 결인가를 읽습니다. 어버이는 아이들 몸짓과 눈빛과 말씨를 읽으면서 아이들이 어떠한 마음결인가를 읽어요. 그러니 우리는 누구나 하늘을 바라보면서 바람으로 날을 읽을 수 있다고 느껴요.
섬의 빗장을 열면 / 휴식하는 안개가 / 식물원 어깨 위로 긴 숨을 내뿜는다 (외도일지 2)길섶 넘보는 해당화 이마에 / 아침이슬 털어내는 파도소리 / 고샅길 올라와 푸른 귀 세우는 동안 (산달도 여름)
거제내기 교사인 정경미 님이 빚은 싯말마다 흐르는 이야기를 떠올립니다. 이 싯말마다 흐르는 이야기란 바로 고향마을을 마음으로 읽는 이야기이지 싶습니다. 지리 정보나 지식이 아니라, 마음으로 고향마을을 마주보고 바라보면서 느끼고 살핀 이야기를 싯말로 가만히 풀어놓았지 싶어요.
해당화라는 꽃송이를 바라보면서 "아침이슬 털어내는 파도소리"를 어떻게 들을 수 있을까요? "푸른 귀"를 어떻게 세울 수 있을까요? 바로 마음으로 듣고 읽으려 하기에, 참말 마음으로 듣고 읽습니다.
그러니까 "칠판에서 파도소리 철썩거린다" 같은 싯말처럼 언제 어디에서라도 마음으로 살며시 다가오는 고향마을 이야기를 찬찬히 갈무리할 만합니다. 물빛을 읽고 햇빛을 읽으며 흙빛을 읽습니다. 꽃빛을 읽고 풀빛을 읽으며 낯빛을 읽지요. 이러면서 웃음빛이랑 노래빛을 함께 읽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