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상 폭 120cm에 숨겨진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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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물의 이력>(지식너머 출판사 펴냄)은 지게나 무선호출기(삐삐)처럼 지난날 많은 사람들에게 요긴하게 쓰였으나 지금은 쓰는 사람들이 거의 없는 물건들과, 교통카드나 수저통처럼 어떤 변화들을 거치며 여전히 요긴하게 쓰이고 있는 물건들, 그리고 개다리소반이나 초록 대문 사자머리 손잡이 등처럼 특별한 장식과 상징을 지닌 물건들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다.
디자이너인 저자 김상규는 이들 물건들이 어떤 요소로 이뤄졌으며, 어떻게 쓰였는지, 언제 어떤 과정으로 우리 곁에서 사라졌으며 어떤 변화들을 거쳐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는지, 어떤 상징을 지니며 우리의 생활과 어떤 연관을 가지고 있는지 등을 조명한다. 어떤 한 종류의 물건 그 소소한 역사와 물건의 주변 그리고 그 속에 숨은 이야기 등을 흥미롭게 풀어놓는다.
책에는 모두 30가지 이야기가 담겨있다. 주제 하나에 한 종류의 물건만 이야기하지 않으니 훨씬 많은 물건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기분 좋게도 책을 통해 만날 수 있는 물건들은 대개 아버지의 지게처럼 내 추억 속에 있는 것들이거나, 수저통이나 플라스틱 의자처럼 지금도 자주 접하는 것들이다. 공감되는 부분이 많음은 물론이다.
"대부분의 책상은 폭이 120cm로 돼 있다. 회사가 달라도 그 크기는 크게 차이가 나지 않는다. 아마도 120cm라는 것이 책상을 사용하기 적절하거나 공간의 효율성을 고려한 최적의 크기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실제로는 책상 재료의 크기가 책상의 크기를 결정하는 주된 요인이다. 판재의 원재료 크기는 가로 120cm, 세로 240cm로 규격을 맞추고 있다. 가구를 직접 만들어보면 합판 한 장으로 몇 조각을 낼지 생각하면서 자르면 되도록 자투리를 남기지 않으려 애쓴다. 책상 폭을 120cm로 하면 판재 한 장에서 자투리 없이 책상 상판 네 조각을 만들 수 있지만, 폭을 125cm로 하면 어떻게 해도 두 조각밖에 만들어 내지 못한다. 5cm만 늘인 것인데도 원가는 두 배가 되는 셈이다. 누구라도 그러한 부담을 감수하면서까지 유별난 치수를 정하지는 않을 것이다.자투리를 남기지 않는 것은 종이를 자를 때도 중요하다. 책의 판형도 경제성과 휴대성을 따져서 정한다. 소설·인문 서적은 대부분 '국판(148×210mm)'이라고 부르는 A5 변형이나 '신국판(150×225mm)'이라고 부르는 A5 변형판을 사용한다. 이 경우는 4×6전지 대신에 '국전지(636×939mm)'를 전지로 한다. 지금 책을 보고 있다면 그 책 또한 이처럼 종이의 손실을 줄이기 위해 경제성을 고려해서 크기가 결정된 것이다, 천을 재단할 때도 같은 원칙을 따르는데 가죽 재단 시 특히 중요하다."(<사물의 이력> 중에서)게다가 이처럼 물건에 관련한 상식까지 일러준다. 그리고 디자이너의 날카로운 시선으로 찾아낸 사물 속 교묘한 의도와 의미까지 들려준다. 그럼으로써 이제까지 당연한 듯, 그리고 무심코 쓰거나, 스쳤던 물건들을 새삼스럽게 다시 보게 한다.
아직도 삐삐 쓰는 사람들이 2만 명이라고? 이 책의 장점 또 하나는 잊고 있거나 놓치고 있는 자신만의 사연이 있는 물건들을 돌아보게거나 기억해냄으로써 추억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홀로 월남해 7남매를 키워낸다고 온갖 고생을 하셨던 아버지의 끈적이는 땀과 한숨을 그 누구보다 많이 알고 있을 아버지의 지게가 지금도 고향집에 있을까?' '늦둥이 외삼촌과 오빠와 언니, 우리 모두가 차례로 앉아 공부하던 앉은뱅이책상은 몇 cm일까?' '흙벽돌을 만들어 집 한 채를 지었던 아버지의 흙손은 아직도 창고 선반 아래에 걸려 있을까?' 등등.
책을 읽노라니 이처럼 유독 짠하게 기억되고 있는 것들이 떠오른다. 언제부터인가 그것이 있는지 없는지조차 아예 생각치 못했던 것들이 말이다. 다음 주 토요일은 친정아버지 생신이다. 우리 7남매는 해마다 아버지 생신에 맞춰 우리 가족만의 모습을 넣은 달력 8부를 제작해 친정을 비롯한 7남매 집에 걸어놓고 1년을 기원하곤 한다. 책 덕분에 지난날 우리를 먹여 살린 물건들을 사진에 담아 내년 달력에 넣을까 생각해본다.
모든 물건들의 쓰임은 물론, 시작과 변화 그리고 사라짐은 우리의 삶과 깊이 연관돼 있다. 그렇다면 이처럼 우리와 어떤 연관을 가진, 그것도 최대한 많은 사람들에게 요긴하게 쓰였던 물건들을 통해 지난날을 되돌아보는 건 어떨까. 또는 나처럼 자신만의 사연을 지닌 물건들을 하나씩 떠올려 지난날을 헤아려 보는 건 어떨까.
책에는 이밖에도 ▲ 컴퓨터의 저장 아이콘이 이제는 쓰지 않는 디스켓 모양인 이유는? ▲ 수저통이 테이블 밑으로 들어가게 된 이유와 사람들의 변화는? ▲ 마우스는 누구에 의해, 어떻게 탄생했을까? ▲ 말발굽은 어떻게 우리 집 현관문까지 왔을까? ▲ 호랑이와 개의 다리가 우리의 안방으로 온 까닭은? ▲ 동물원이 생기기 전까지 우리나라에 전혀 살지 않은 사자를 어떻게 우리의 대문 손잡이로 넣게 됐을까? ▲ 스마트폰이 많은 것들을 해내는 현재에도 삐삐를 쓰는 인구가 2만 명이나 된다? ▲ 음료를 시원하게 마실 수 있게 해주는 알루미늄 캔은 언제부터 쓰기 시작했으며, 왜 처음부터 알루미늄 캔을 쓰지 않았을까? 등등 이제까지 당연한 듯 스쳐지나갔던 사물들을 흥미롭게 보게 만드는 이야기가 담겨 있다.
사물의 이력 - 평범한 생활용품의 조금 특별한 이야기
김상규 지음,
지식너머,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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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제게 닿아있는 '끈' 덕분에 건강하고 행복할 수 있었습니다. '책동네' 기사를 주로 쓰고 있습니다. 여러 분야의 책을 읽지만, '동·식물 및 자연, 역사' 관련 책들은 특히 더 좋아합니다. 책과 함께 할 수 있는 오늘, 행복합니다.
오마이뉴스 전국부 기자입니다. 조용한 걸 좋아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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