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은성 영화감독
김영숙
남구 숭의동에서 태어나 숭의초·송도중·대건고등학교를 졸업한 조 감독은 제물포역 일대에서 20여 년을 살았다. 조 감독이 고등학생일 때 본 영화잡지 '로드쇼'와 '스크린'이 그의 인생을 결정하는 데 큰 영향을 줬다.
"좋은 기사와 편집이 많았어요. 그걸 보고 '영화(영화 관련 일)가 재밌겠다'고 생각했죠. 연극영화과에 진학하고 싶었는데 인천에는 관련 학원이 없었어요. 마침 고등학교 3학년 때 남구 주안에 학원이 생겨, 그곳을 다녔습니다."그때 학원을 같이 다녔던 친구들 중 조 감독보다 먼저 감독으로 데뷔한 이도 있고, 방송국에서 일하는 사람, 영화 프로듀서도 있다. 지금은 뿔뿔이 흩어졌지만 영화판에 남아 있는 사람이 많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연극과 영화가 아닌 음악에 도전했던 그는 이도 여의치 않아 입대했다. 제대 후 부산에 있는 경성대학교 연극영화과에 입학했다. 졸업 무렵인 1998년, 영화를 찍으려 했는데 외환위기가 터져 경제적 사정이 어려워졌다.
"당시 영화진흥위원회에서 공모한 독립단편영화 제작 지원 부문에 선정돼 일부 지원을 받았어요. 그런데 (영화를) 찍을 돈이 부족해 등록금을 대출해 찍었고, 학교는 졸업을 못했죠. 부모님은 제가 졸업한지 알아요.(웃음)"그렇게 찍은 영화 <우주꽃사슴>은 빚 1000만 원을 남겼다. '빚을 떠안고 충무로로 들어오라'는 선배들의 조언에도, 조 감독은 빚을 갚아야 한다고 생각해 영화 제작을 그만두고 광고홍보영상 관련 일을 했고, 그 일로 중국에 가 1년간 살기도 했다.
그 후 부산에서 10여년을 산 조 감독은 충남과 서울을 거쳐 8년 전 다시 인천에서 터를 잡았다. 현재 동암역 근처에 사는데, 그의 말로는 동암역 근처에 영화 쪽에서 일하는 예술가가 많이 살고 있단다.
중국에서 귀국했을 때 친구들의 감독 입봉에 자극을 받기도 했다. 30대 중반, 지인들의 소개로 영화 <색즉시공 시즌2>와 <눈에는 눈, 이에는 이>의 연출부에서 일했으며 자신의 얘기를 시나리오로 쓰기 시작했다. 직접 쓴 시나리오로 만든 영화가 입봉 작품이 됐다.
<션샤인 러브>는 내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