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러방지법'안에 대한 필리버스터 ,즉 국회 본회의 무제한 토론이 90시간을 넘어선 지난달 27일 오후 2시 경, 본회의 방청을 위해 국회의사당 후면 안내실을 찾았다가 번호표를 받고 대기중이던 방청객들이 의사당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 신분증을 맡기는 절차를 위해 줄을 서 있다.
안홍기
몇 개의 검색대를 통과해 들어간 2월 29일의 국회 본회의장 2층 방청석은 3분의 2가 차있었다. 엄마 손을 잡고 온 초등학생부터 돋보기안경을 끼고 수첩에 필기를 하며 듣는 할아버지까지 연령대는 다양했다. 방청석 앞에 있는 갈색 울타리 너머로 방송국과 신문사들이 있었다. 2층의 모든 사람들은 보고, 기록했다.
하지만 같은 기록은 아니었다. 사실 우리가 보는 정치는 미디어가 제공한 2차 기록물이다.
언론은 비판이나 논조라는 이름으로 입맛에 맞는 정보만 제공하거나, 한정된 분량 때문에, 중요하다고 판단되는 정보 이외의 것들은 삭제한다. 언론에서 보도하는 정치는 사안 그 자체가 아니라, 사안에 관한 여야의 말싸움을 요약했거나, 'A의원이 B사안에 대해 반대했다'라는 일부의 사실뿐이다. 우리가 마주하는 정치는 발췌된 기록이다.
하지만 필리버스터는 날것의 정치기록이었다. 국회의원은 정제된 언어로 무제한 시간 동안 온전한 정보를 전달했다. 언론을 통해 제한되거나 요약된 정보만을 전달받았던 사람들은, 온전한 정보의 수집가가 됐다. 언론에 'A 의원이 테러방지법 반대 연설을 했다'라는 한 문장으로 요약될 이 말들은 몇 시간 동안 날것의 형태로 흘러나왔다.
누군가는 수첩에 국회의원의 말을 적기도 하고 고개를 끄덕이거나 갸웃거리기도 했다. 작은 소리로 옆 사람과 이야기하기도 했다. 국회의원과 방청객들은 서로 이야기를 할 수는 없었지만 서로의 언어와 생각이 공기를 떠돌아 다녔다.
필리버스터는 설득의 연단이기도 했다. 합법적인 의사방해라는 의미보다 설득에 좀 더 초점을 맞춘 것은 해당 의제에 관해서만 발언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설득은 단순히 테러방지법 반대에 그치지 않았다. 근본적인 질문을 시작했다. 테러방지법 이전에 생각해야 할 문제들에 관해 말했다.
내가 방청했던 국민의당 최원식 의원은 '사익과 공익이 충돌할 때 어느 것을 먼저 더 생각해야 하는가', '국민과 국가의 관계는 어때야 하는가'를 물었다. 우리는 테러방지법과 관련된 이 문제에 관해 사회적으로 토론해본 적이 있었나. 아니, 생각해 볼 기회조차 있었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