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거름의 제주 바다숙소에서 바라보는 해거름의 제주 바다입니다.
고성혁
그래서 생각한 것이 오랜 만의 이번 가족여행이었다. 돌이켜보건대 나는 아비로서 무얼 했던가. 아이들이 중·고교를 졸업하기까지 어머니가 우리 곁에 계시며 아이들의 건사를 전부 도맡아 하셨고 일부나마 아내가 나머지를 거들었으니 내가 했던 일은 없었다.
그동안 내가 보여준 것은 '부재'이거나 '술 귀신'이었다. 모범이라고는 없었다. 다른 아버지들처럼 책을 읽거나 뭔가를 열정적으로 성취해 동기를 부여했던 일은 결코 없었다. 그랬음에도 내 아이가 큰 실수 없이 평범하게 성장해 이제 한 가정을 꾸린다고 나선 것이다. 진심으로 감사할 일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여행 계획에는 그동안의 잘못을 뉘우치고 앞으로 "나도 잘할 테니 너희도 내게 관심을 가져주라"는 내 비루한 희망도 포함됐을 것이다.
우리는 늘 하던 대로 아들 둘이 내려온 날 저녁에 인터넷을 통해 저마다 자기의 정서에 맞는 여행지를 하나씩 추천해 동그라미를 쳤다. 우리에게 여행이라는 것은 한자 뜻 그대로 '旅行'이었다. 나그네가 돼 잘 모르는 그 어딘가로 가는 것. 나그네라는 단어가 주는 느낌은, 무엇인가 우리에게 센티멘털과 고독, 사색 및 일탈, 그런 정도를 불러일으키지 않는가. 여행의 주인공이라고 할 음악을 하는 큰아이도 그런 편이었다.
1월 어느 날, 우리는 제주공항에 도착했다. 렌터카를 빌렸고 여행을 시작했다. 바람이 펄럭이는 올레 길을 천천히 걸어 올라가 추위에 몸을 웅크리면서 파도가 하얗게 부서지는 바다를 바라봤다. 그리고 우도에 들어가서 두 아이들이 해안도로를 달리는 동안 스쿠터를 망가뜨리고 망연자실, 대여점 안에서 바람 속을 뚫고 달리는 청춘들을 부러운 눈으로 쳐다보기도 했다. 흑돼지 삼겹살에 소주를 마셨고, 제주도 바다를 내려다보는 높은 곳에서 하늘과 맞닿아 반짝거리는 해안선을 손가락질하기도 했다.
목각사진이 남긴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