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외딴 곳의 마지막 봄... 이게 진짜 '테러'다

[포토에세이] 거여동재개발지구 풍경

등록 2016.03.03 20:07수정 2016.03.04 1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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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여동재개발지구 아직 사람이 살고있는 증거가 작은 연통을 타고 올라오는 연기처럼 희미하게 남아있는 거여동재개발지구, 이제 거여동재개발지구에 남은 이들은 거의 없고, 더는 사람이 살 수 없는 곳이 되어버린듯 황량하다.
거여동재개발지구아직 사람이 살고있는 증거가 작은 연통을 타고 올라오는 연기처럼 희미하게 남아있는 거여동재개발지구, 이제 거여동재개발지구에 남은 이들은 거의 없고, 더는 사람이 살 수 없는 곳이 되어버린듯 황량하다.김민수

이제 거반 떠났을 것이라고 했다. 지난겨울, 차마 그곳을 찾지 못했던 것은 연탄 한 장에 의지해서 긴 겨울을 보내는 이들을 마주할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꽃샘추위가 지나고 조금은 봄의 기운이 완연한 날(2월 26일), 그래도 아직도 그곳을 지키고 있는 이들이 제법 있을 것으로 생각하고 그곳을 찾았다. 그러나 골목길은 걷기 힘들 정도로 변해 있었고, 이미 인적이 끊긴 지 오래된 흔적들을 간직하고 있었다.

거여동재개발지구 꽃샘추위가 지나간 골목길에 봄 햇살이 가득하다. 사람들이 떠난 골목길을 파고드는 햇살이 오히려 밉게 느껴지는 날이다.
거여동재개발지구꽃샘추위가 지나간 골목길에 봄 햇살이 가득하다. 사람들이 떠난 골목길을 파고드는 햇살이 오히려 밉게 느껴지는 날이다.김민수

봄볕은 따사로운 데, 오랜만에 그 좁은 골목길에도 햇살이 완연한데 인적이 끊겼다. 봄볕이 얄밉게 느껴진다.

골목길에서 조금만 벗어나면, 4월 총선을 앞둔 예비후보들의 대형 현수막이 즐비하고, 현수막마다 자기들이 이 지역을 위해서 최적의 인물이라고 선전하고 있다. 이곳이 이렇게 되기까지 자기들이 무슨 일을 했다고 저러시나 싶다.

거여동재개발지구 다 허물어진 집들, 낡아버린 권투도장 모집 전단이 이곳의 쇠락과 함께 희미해지고 있다. 한때 권투는 가난한 이들에게 희망의 끈을 붙잡는 운동이기도 했었다.
거여동재개발지구다 허물어진 집들, 낡아버린 권투도장 모집 전단이 이곳의 쇠락과 함께 희미해지고 있다. 한때 권투는 가난한 이들에게 희망의 끈을 붙잡는 운동이기도 했었다.김민수

서울 변두리, 돈을 벌기 위해 서울로 밀려왔고, 돈이 없어 변두리를 삶의 터전으로 삼았다. 국가적으로도 값싼 노동력이 필요했기에 땅뙈기 두어 평씩 떼어주면서 달동네 판자촌을 형성하게 했다. 서울 변두리마다 널찍한 공터에는 버스 종점이 있었고, 버스 종점은 새벽부터 인산인해를 이뤘다.

아침이면 버스를 타기 위해 길게 줄을 서야만 했고, 버스는 종점에서 이미 만원버스로 출발했다. 첫차나 막차가 아닌 경우 대부분 만원버스였고, 사람들이 모두 일하는 낮시간 대에나 조금 한산했다.


거여동재개발지구 이제 곧 길건너 고픙 아파트를 닮은 아파트가 들어설 것이다. 과연 이곳에 살던 이들 중에서 얼마나 그곳에 살 수 있을까? 서울 변두리에 삶의 터전을 삼고 살아가야 했던 이들은 대한민국의 경제발전 밑바닥을 받쳐주는 이들이었다. 그러나 이제 그들은 대한민국에서 더는 설 곳이 없다.
거여동재개발지구이제 곧 길건너 고픙 아파트를 닮은 아파트가 들어설 것이다. 과연 이곳에 살던 이들 중에서 얼마나 그곳에 살 수 있을까? 서울 변두리에 삶의 터전을 삼고 살아가야 했던 이들은 대한민국의 경제발전 밑바닥을 받쳐주는 이들이었다. 그러나 이제 그들은 대한민국에서 더는 설 곳이 없다.김민수

부모님들이 일하러 나간 사이 아이들은 학교에서 돌아왔고, 특별히 할 일도 없으니 골목길로 쏟아져 나와 놀았다. 변두리 지역이었으므로 조금만 더 걸어가면 야산도 있고, 계곡도 있었으니 그곳이 아이들의 놀이터가 됐다.

거여동재개발지구는 남한산성이 그리 멀지 않고, 지금은 건천이 되다시피 했지만 198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계곡에는 깨끗한 물이 흘렀다. 게다가 그리 멀리 가지 않더라도 남한산 줄기에서 흘러나온 물이 흐르는 천은 물고기가 살고 있을 정도로 깨끗했었다.


거여동재개발지구 이제 봄비가 내려도 비가 새는 집에서 한숨을 쉬며 살아갈 사람들도 남아있지 않다. 그들은 다 어디로 떠난 것일까?
거여동재개발지구이제 봄비가 내려도 비가 새는 집에서 한숨을 쉬며 살아갈 사람들도 남아있지 않다. 그들은 다 어디로 떠난 것일까?김민수

골목길에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넘쳐나던 그때, 힘겨운 삶을 살아가면서도 희망을 붙잡고 살았다. 88올림픽이 유치되면서 논밭투성이었던 둔촌동에 올림픽아파트가 들어섰다. 그런 와중에도 거여동과 마천동, 거여동재개발지구는 별반 변화의 조짐이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변화의 바람은 그곳을 가만두지 않았다.

맨 처음에는 연립주택 같은 것들이 들어섰고, 또 그자리엔 아파트가 하나둘 자리하기 시작했다. 그런 와중에서도 거여동재개발지구는 요지부동이었다. 개발을 노린 사람들 때문이라고도 했다.

거여동재개발지구 생존의 도구였을 리어카가 사람들이 떠난 폐허 담벼락에 기대에 봄햇살을 즐기며 녹슬어가고 있다.
거여동재개발지구생존의 도구였을 리어카가 사람들이 떠난 폐허 담벼락에 기대에 봄햇살을 즐기며 녹슬어가고 있다.김민수

주변이 개발되면서, 주변의 가난한 이들은 거여동재개발지구로 몰려 들었다. 그리고 그곳도 개발될 것이라는 기대감에 부풀어 있었다.

그러나 그런 기대는 쉽사리 이뤄지지 않았고, 개발 이익에만 관심이 있는 건설업체와 이를 조정해 줘야 할 국가정책의 부재는 결국 지금의 거여동재개발지구를 만들어버린 것이다. 거여동재개발지구뿐 아니라 서울 곳곳에 남아있는 달동네는 서민들에게 안정된 주택을 제공해야 할 의무를 국가가 감당하지 않고 건설사에게 떠넘긴 까닭이다.

그리고 이런 행태는 기형적인 부동산정책으로 인해 발생했음에도, 약자들의 이기적인 행태 때문이라고 호도했다. 아니, 그들은 재개발자체를 반대한 것이 아니라, 재개발이 됐을 때도 지금처럼 그곳에 살 수 있는 방안을 요구한 것이었다.

거여동재개발지구 버려진 구둣솔과 하수구 뚫은 공구와 수도파이프가 블럭에 놓여져 있다. 지금은 버려진 것들이지만, 그곳에 살던 이들과 동고동락하던 이들이었을 터이다.
거여동재개발지구버려진 구둣솔과 하수구 뚫은 공구와 수도파이프가 블럭에 놓여져 있다. 지금은 버려진 것들이지만, 그곳에 살던 이들과 동고동락하던 이들이었을 터이다.김민수

어려운 형편에 개발이 된들 웃돈을 얹어줘야만 하는 아파트에 들어갈 수도 없고, 각종 관리비 등도 감당할 수도 없는데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 있겠는가? 결국, 딱지라도 팔고 더 변두리로 밀려나는 것 외에는 없었던 것이다.

그것을 이 사회는 당연한 것으로 여겼고, 재개발이 되면 그곳에 살던 이들은 거반 그곳을 등지고 떠날 수 밖에 없었다.

나는 궁금하다.

이들은 지금 다 어디로 떠났으며, 재개발이 됐을 때 이곳으로 돌아올 수 있을까?

거여동재개발지구 거여동재개발지구를 지키던 이발관도 이젠 문을 닫았다. 그나마 골목길 대로변이라 거여동재개발지구를 철거하는 날까지는 버틸 줄 알았다. 사람들이 떠난 그곳에서 더는 버틸 수 없어 떠났을 것이다.
거여동재개발지구거여동재개발지구를 지키던 이발관도 이젠 문을 닫았다. 그나마 골목길 대로변이라 거여동재개발지구를 철거하는 날까지는 버틸 줄 알았다. 사람들이 떠난 그곳에서 더는 버틸 수 없어 떠났을 것이다.김민수

그곳엔 어려서부터 봐온 이발관이 있었다.

작년에도 영업을 하고 있어서 그나마 위안이 되었지만, 그곳도 이젠 폐업을 하고 그곳을 등졌다. 그 많던 이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골목길을 다니며 사람들이 살고있음직한 집들을 세어봐도 몇 가구 남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게다가 남아있는 집들은 언제 허물어질지 모를 상태고, 골목들마다 '출입제한 구역' 표시가 줄쳐져 있으니 이번 봄이 이곳의 마지막 봄이지 않을까 싶다.

거여동재개발지구 가난한 이들이 부르짖고 아우성 칠곳이 어디있겠는가? 그들은 또 그렇게 그곳에서 위로를 받으며 살았을 것이고, 행여라도 좋은 일들이 자기 삶에 가득하기를 소망했을 것이다.
거여동재개발지구가난한 이들이 부르짖고 아우성 칠곳이 어디있겠는가? 그들은 또 그렇게 그곳에서 위로를 받으며 살았을 것이고, 행여라도 좋은 일들이 자기 삶에 가득하기를 소망했을 것이다.김민수

거여동재개발지구 폐허가된 재개발지구의 지붕 너머로 십자가 첩탑도 다 허물어져 버렸다. 가난한 이들을 보듬지 못하는 종교가 존재해야할 이유가 있을까? 거여동재개발지구 골목길에 서면 곳곳에 십자가 행렬이다. 그들은 그곳에 살던 이들이 하나 둘 떠나야만 할 때 무엇을 했던 것일까?
거여동재개발지구폐허가된 재개발지구의 지붕 너머로 십자가 첩탑도 다 허물어져 버렸다. 가난한 이들을 보듬지 못하는 종교가 존재해야할 이유가 있을까? 거여동재개발지구 골목길에 서면 곳곳에 십자가 행렬이다. 그들은 그곳에 살던 이들이 하나 둘 떠나야만 할 때 무엇을 했던 것일까?김민수

봄볕이 따사로운 만큼 그곳의 풍경은 괴기스러웠다.

가난한 이들이 사는 곳에는 왜 이렇게 점집이나 사당이나 교회가 많을까?

어느 종교든 건강한 종교라면, 가난한 이들과 소외된 자들의 아우성과 부르짖음에 답을 주는 종교여야 하지 않겠는가? 과연, 그들은 그곳에서 무엇을 한 것인가? 가난한 이들의 호주머니나 노린 것은 아닌지, 그래서 힘없는 이들은 다 떠난 마당에 자신들은 그곳에 종교부지나 하나 받아보려고 안간힘을 쓰는 것은 아닌지라는 생각에 부아가 치민다.

그곳을 한 바퀴 돌고 난 뒤에 이번 봄이 마지막 봄일 것이라는 예감이 들었다. 이제 머지않아 가림막이 설치될 것이고, 포클레인이 쇠락한 거여동재개발지구를 초토화시킬 것이며, 아파트 단지가 들어설 것이다.

그리고 그곳엔 이곳에 대한 추억이라고는 편린도 없는 이들이 남한산성을 바라보며 살아갈 것이다. 참으로 씁쓸한 봄날이다. 이런 상황은 대국민 테러가 아니고 무엇이란 말인가?
#거여동재개발지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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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오마이뉴스 전국부 기자입니다. 조용한 걸 좋아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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