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퀴어문화축제가 열린 지난 2015년 6월 28일, 서울광장을 출발해 을지로 일대에서 축제 참가자들이 퍼레이드를 하고 있다.
이희훈
- 지난해 6월 26일 미국 대법원에서 동성혼에 대한 합헌 판결이 났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동성혼, 동성애와 관련해 지난해 6월 열린 퀴어 퍼레이드에 많은 관심이 쏠렸던 것으로 기억되는데요. 혹시 실제 활동하면서 이전보다 사람들의 성소수자에 대한 생각이나 인식, 행동에 변화가 있다고 느끼시나요?"2015 퀴어문화축제가 미국 동성혼 제도화 판결이 나고 바로 직후에 열린 것은 정말 우연이었어요. 덕분에 그 효과를 많이 봤죠. 실제로 흥에 겨운 분위기가 조성된 것, 그리고 많은 사람이 거리로 나올 수 있게 된 계기가 됐어요.
그런데 실질적으로 활동하면서 지속적인 영향을 크게 느끼지는 못해요. 그 당시에는 페이스북에 무지개 프로필 사진으로 도배가 되는 등 성소수자들에 대한 지지의 흐름이 있었지만 정말 '반짝'하는 흐름이었어요. 그렇다 해도 동성결혼 합헌 판결과 그런 분위기가 시사하는 바는 크다고 생각해요. 우선 법적이나 제도적으로 큰 영향을 미칠 수는 있겠죠. 외국의 판례가 판사들이나 검사들, 변호사들에게 영향을 미치니까요.
또 큰 인식의 흐름이 바뀌지 않았을 뿐이지, 아예 인식이 바뀐 사람이 없다는 말은 아니에요. 유행처럼 프로필 사진을 무지개로 바꾸는 분위기도 있었는데요. 왜 그러는지 이유도 모르면서 바꿨다가 이게 무슨 뜻이냐고 물어보고 '아 그런 뜻이었구나. 나도 이걸 지지한다는 뜻에서 이걸 계속 유지하겠다'고 밝히는 분들도 분명히 있었어요. 물론 크게 보면 소수에 불과하지만요. 그리고 이 여파로 오히려 반 성소수자 단체에서 '이건 막아야 한다'면서 반발하는 상황이에요. 그래서 크게 인식이 개선되었다고 말하기는 어렵네요."
- 그렇다면 성소수자 인권향상을 위해 어떤 점들이 크게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하시나요?"우선 성소수자 차별과 관련한 연구가 더 진행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한국에서는 성소수자에 대한 학문이나 연구가 전무한 것 같아요. 외국의 경우에는 성소수자의 차별로 인해 겪은 (의료)건강권과 관련된 연구나 논문들이 많이 있어요. 그런데 한국에 성소수자 건강권 관련 연구를 하시는 분은 드물어요. 제가 아는 바로는 고려대학교 보건정책관리학부의 김승섭 교수님이 계시고요. 특히 트랜스젠더 관련 연구나 학문도 많이 빈약해요. 독자적으로 퀴어 이론, 퀴어 학문을 가르치거나 개발하거나 하는 분들도 거의 찾기 힘들어요.
미국에 가서 성소수자 단체를 방문한 적이 있는데, 대학에서 '성 다양성실'이라는 것을 운영하는 교수님을 뵌 적이 있어요. 그분이 말씀하시길 '학문이 생겨야 제도가 뒤따른다'고 하셨어요. 제도를 만들기 위해서는 그에 뒷받침되는 이론과 근거가 있어야 한다는 말이죠. 하지만 한국에는 그 영양분이 될 만한 연구는 거의 없고, 외국 것을 참고하자니 한국 사례에는 안 맞는 사태가 일어나요. 결국 제도가 만들어질 수 없는 상황이 되는 거죠. 그래서 학문이 먼저 발달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두 번째로 교육 개선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차별'과 '성소수자'가 더 많이 다뤄질 필요가 있어요. '차별은 무엇인가?', '차별이 왜 나쁜가?', '차별은 하면 안 된다'라고 차별에 대한 정확한 이해와 교육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이런 교육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으니까 학생들이 이것이 차별인지, 혐오인지 모르게 일상적인 혐오를 하는 거죠. 성교육에서도 성소수자 관련 교육은 거의 없어요. 적어도 '성적지향'이나 '성별 정체성'이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세 번째는 '주변에 성소수자가 있다'는 사실을 인식했으면 좋겠어요. 커밍아웃을 안 했을 뿐이지, 주변엔 정말 많은 성소수자 분들이 살고 있거든요. 하지만 어떤 분들은 '내 주위에는 없다'는 이유로 그걸 인식을 못 해요. 그래서 악의적이지 않더라도 혐오나 차별 발언들을 하게 되고, 결국 주변에 있는 성소수자들은 상처를 받는 거죠."
- 만약 성소수자에 대한 인식·인권 개선이 이루어진다면 한국 사회와 사람들의 인권 감수성, 인권을 바라보는 시각에 어떤 긍정적인 변화를 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시나요?"차별은 모두 같은 맥락으로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해요. 여성에 대한 차별,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 장애인들에 대한 차별 등 소수자들에 대한 차별의 이면에는 모두 '나와 다르다', '내가 우월하다'는 생각에 근거한 배척이 깔려있다고 생각해요. 따라서 어느 한쪽에 차별이 남아있는 한 다른 쪽의 차별도 남아 있을 수밖에 없죠.
그래서 연대활동을 하러 갈 때, 예를 들어 여성단체와 연대하러 간다고 하면 '여성에게 좋은 것은 성소수자에게도 좋고, 성소수자에게 좋은 것은 여성에게도 좋다'라는 문구를 내걸고 연대활동을 해요. '차별은 연결되어 있다'는 생각에서 나온 문구죠. 성소수자 차별이 없어지면 다른 차별이 없어지기도 쉬울 거고, 그렇게 되면 모든 사람이 평등하게 살 수 있는 그런 세상이 오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 성소수자가 아닌 이들이 일상에서 할 수 있는 작은 행동이나 실천으로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우선 '주변에 성소수자가 있다, 존재한다'라는 인식을 갖는 것부터 시작하면 좋을 것 같아요. 그리고 주변에 '나는 성소수자를 지지한다'는 것을 알리기만 해도 정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해요. 성소수자들이 커밍아웃을 하지 않는 이유는 '내가 커밍아웃했을 때 이 사람이 받아줄까?', '나를 혐오하지 않을까?'하는 두려움 때문이거든요.
하지만 먼저 '나는 성소수자를 지지한다'는 것을 밝혀주면 그런 두려움이나 걱정이 사라지겠죠. 사소한 것일 수도 있지만, 큰 힘이 되겠죠."
"성소수자도 남들과 다른 사람이 아니에요"인터뷰 말미, 더 해주고 싶은 말이 있는지 묻는 말에 오소리 활동가는 잠시 생각하다가 몇 마디 덧붙였다.
"이런 말을 하고 싶네요. 차별받지 않을 권리는 누구에게나 있다고 생각해요. '만약 내가 차별받는 입장이라면 심정이 어떨까?', '내가 만약 성소수자라면, 성소수자가 겪는 일상적인 차별을 만약 내가 겪는다면?' 역지사지로 그들의 입장을 생각해보시면 좋겠어요. 그 결과 성소수자도 남들과 다른 사람은 아니라는 걸 알면 좋을 것 같아요."여전히 사회에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은 공공연하게 퍼져있다. 일상에서는 물론이거니와 보수 기독교단체, 대학가, 그리고 시민단체에서도 반 성소수자 운동이 일어나고 있다. 지난 1월 26일 반성소수자 단체인 바른 성생활을 위한 국민연합과 강서시민단체 등은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동성애 확산을 저지하기 위한 국가인권위원회법의 차별금지 조항의 '성적 지향' 문구 개정·삭제'를 주제로 포럼을 가지기도 했다.
오소리 활동가의 말은 성소수자를 혐오하는 이들에게 일침을 가한다. 하지만 이것은 성소수자의 문제에서만 그치지 않는다. 내가 차별하는 저 사람이 나와 다르지 않음을 깨닫고 혐오의 대상이 아니라는 것을 아는 것. 이것은 성소수자 인권 문제뿐 아니라 우리 사회 전반적으로 퍼진 차별과 혐오를 없애고 평화를 가져오는 첫걸음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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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에 성소수자가 있다는 인식, 그게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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