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주시 수암골을 빛내고 있는 연탄트리다. 지난해 12월부터 최근 2월까지 전시했는데 오는 3월 철거할 계획이다. 연탄트리에는 오디오까지 만들어 놔 휴대전화나 음반기기를 연결하면 음악을 들을 수 있다
충청리뷰
파인애플, 뻥튀기, 양말 팔며 글쟁이 꿈 키워 림 작가는 충북 음성군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그가 중학생이 됐을 무렵 아버지는 좋지 않은 일로 집을 떠나 있었고 어머니는 가출했다. 중학교 3학년 때 어머니를 찾기 위해 무작정 서울로 갔다가 그 길로 떠돌이 생활을 시작했다.
보증금 없이 월세 10만 원짜리 달동네 방을 전전긍긍했다. 겨울이면 보일러에 기름 넣을 돈이 없어 그냥 냉골에서 지냈다. 먹고 살기 위해 닥치는 대로 일을 했다. 재래시장에서 수세미와 인형, 칫솔을 떼다가 상가를 돌며 팔았다. 술집을 기웃거리며 파인애플 장사도 했다. 교통체증 구간에서 뻥튀기를 판 일도 있다.
그중 10년 넘게 한 일은 양말 판매다. 서울에서 안 가본 노인정이며 아파트가 없을 정도로 발품을 팔았다. 할머니들에게 '학비를 벌기 위해 나온 대학생'이라고 속이고 양말을 판 적도 있다고 한다.
"지하철 노선도를 보고 끝에서 끝을 돌며 양말을 팔았어요. 서울에서 안 가본 거리가 없을 정도예요. 늘 이 양말을 다 팔 수 있을까, 어떻게 팔아야 밥을 먹을 수 있을까가 숙제였어요. 오로지 나 혼자였으니까요. 하루하루가 스트레스였어요. 어떤 날은 5000원 어치가 안 팔려요. 지하철비 내면 밥값이 없었죠. 그러다 어느 비 오는 날 너무 배가 고파 수제비를 먹었는데 갑자기 서글퍼져 국그릇에 눈물이 왈칵 쏟아지더라고요."검정고시로 고등학교 과정을 마친 림 작가는 한때 전태일 문학상을 꿈꾸는 문학청년이었다. 컴퓨터 폴더에는 빛을 보지 못한 습작 소설이 가득하다. 열흘 바짝 일해 100만 원쯤 번 뒤 20일 동안 글을 쓰던 시절이 있다. 골방에 박혀 글을 쓰고 친구들과 어울려 서로 비평했다. 등단을 위해 여러 신문사에 투고했지만 실패했다. 스물아홉 살 되던 해, 친구 10명과 '인디문학네트워크'라는 웹진을 만들었다.
"음악에는 인디(독립)가 있잖아요. 문학에도 인디문학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죠." 그는 편집장을 맡았다. 친구들에게 원고를 받아 웹진에 올리고 한 달에 한 번 인쇄본을 만들었다. 책은 지인의 식당이나 카페에서 팔았다. 서울 홍대나 종로 프리마켓에 참가해 책을 판매하기도 했다. 하지만 2년을 넘기지 못하고 흐지부지 그만두었다. 요즘은 누리집(
http://streetartist.kr)를 만들어 연탄 일기 등의 글을 쓰는 정도다.
"배낭에 노트북 하나 책 몇 권을 가지고 다니며 달동네에서 방을 빌려 습작을 했어요. 월세가 밀리기 일쑤였죠. 참 쓸쓸한 시간이었어요."유튜브 통해 그림 독학하다 '연탄재 장난' 시작 그는 서른두 살이 되던 해 글쓰기를 접었다. 정적인 글쓰기가 자신과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10년 넘게 사귄 여자 친구와도 그 무렵 헤어졌다. 서울이 싫었다. 갖고 있던 전자제품을 팔아 모은 돈을 들고 무작정 강원도 강릉 정동진행 열차를 탔다.
거기서 부산까지 걸었다. 걷다 지치면 여인숙에서 하룻밤을 묵었다. 부산에 도착해서는 중고 자전거를 사서 다시 전국을 유랑했다. 1년 7개월 간의 방랑.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머릿속이고 가슴속이고 터져 버릴 듯했단다.
"10대와 20대 때 서울이란 도시는 뭔가 할 수 있을 것 같은 장소였어요. 나도 찬란히 빛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죠.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끊임없이 꿈을 갉아먹는 도시가 아닌가, 소비를 추동해서 낙오자로 전락시키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