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시간째 필리버스터... 허리통증 참는 은수미 의원은수미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 24일 새벽 국회 본회의장에서 테러방지법 반대 무제한 토론(필리버스터) 도중 손으로 허리를 짚어가며 통증을 참고 있다.
남소연
국회 본회의에서 진행된 필리버스터는 1964년 김대중 전 대통령 이후 무려 52년 만입니다. 반세기가 넘도록 볼 수 없었던 진풍경입니다. 그동안 날치기와 치열한 몸싸움, 고성과 욕설이 오갔던 국회에서 드라마에서나 볼 수 있었던 장면이 펼쳐지고 있으니 시민들의 반응이 뜨거울 수밖에 없는 것은 당연합니다.
야당 의원들을 향한 시민들의 성원과 응원은 온라인에서만 나타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필리버스터 현장을 직접 보기 위해 국회 본회의장을 찾는 시민들이 있는가 하면, 참여연대가 국회 앞에서 진행하고 있는 '테러방지법 직권상정 반대 시민 필리버스터'에 참여하는 시민들도 있습니다. 야당 의원들의 필리버스터가 잠자던 시민들의 정치 본능을 일깨우는 자극제가 되고 있는 것입니다.
야당 의원들의 필리버스터를 보면서 지난 여름 방영되었던 드라마 <어셈블리>의 진상필 의원이 떠올랐습니다. 그 역시 총리임명 동의안을 막아내기 위해 필리버스터를 자청하고 나섭니다. 그는 무려 25시간에 걸친 의사진행 발언으로 보는 이들을 처연하게 만들었습니다. 부적격 고위공직자의 임명을 막아야 한다는 강렬한 의지가 초인적인 투지를 불러일으킨 것입니다.
국민의 머슴이기를 자처했던 '국민 진상' 진상필 의원은 판타지 속의 인물입니다. 판타지는 비루한 현실을 깨닫는 순간 산산이 부서지게 마련입니다. 극중에서 진상필 의원이 아무리 고군분투를 해도 그것은 어디까지나 판타지에 불과할 뿐입니다.
현실 정치에서는 '진상필' 같은 정치인을 찾을래야 찾아 볼 수가 없습니다. 진상필 의원이 돋보이면 돋보일수록 그에 비례해서 현실과의 괴리는 점점 커져만 갑니다. 진상필 의원을 보면서 느꼈던 카타르시스가 모니터가 꺼지는 순간 끝모를 공허와 허기로 채워지는 것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