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쉐라메르 쉐라메르 홍순기 대표(오른쪽)와 홍준표 매니저. 쉐라메르는 불어로 어머니의 집을 향하다라는 뜻이다. 홍순기 대표는 하루 5번 빵을 굽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는데, 이는 따뜻한 어머니의 품처럼 최대한 갓 구은 빵을 제공하기 위해서다.
김갑봉
홍순기(60) 쉐라메르 대표는 20대 때 서울의 한 제과업계에 몸을 담았다. 그는 제과점에서 공장장(제과업계 주방장)으로 일하던 중 본인의 빵집을 차리기 위해 1988년 봄 전 재산을 털어 경기도 안산으로 향했다.
당시 제과업계는 크라운베이커리와 고려당, 뉴욕제과가 대세였다. 홍 대표는 안산에 와 일부러 뉴욕제과와 고려당이 있는 지역을 택했다. 그리고 보증금 1000만 원에 월세 120만 원 짜리 점포를 구해 '케익타운'을 열었다.
당시 그 월세면 서울에서도 점포를 구할 수 있는데다, 유명 프랜차이즈 제과점 앞에 차린다고 하니, 주변에선 모두 그를 정신 나간 사람이라고 했다. 하지만 홍 대표의 생각은 달랐다.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 프랜차이즈 제과점도 반제품 상태로 본사에서 납품받아 판매했다. 홍 대표는 그 반제품에 맞서 자신이 갓 구워낸 빵을 판매하면 승산이 있을 거라고 판단했다.
그는 아침 7시에 가게 문을 열어 밤 12시까지 빵을 구웠다. 또, 직원들이 퇴근한 뒤 밤 12시부터 아침 7시까지 따로 빵을 만들었다. 잠은 낮에 청하는 것으로 대신했다. 매일매일 갓 구은 빵은 입소문으로 번지기 시작했고, '케익타운'은 금세 유명해졌다.
그 뒤 홍 대표는 1991년 부평구 산곡동에 정착했다. 그가 산곡동에 들어설 때도 안산에서처럼 그의 빵집 맞은편에 제과업계 프랜차이즈 강자였던 크라운베이커리가 있었고, 이듬해에는 파리바게트까지 입점했다. 산곡2동우체국 사거리 귀퉁이 세 곳에 빵집이 들어서면서 '제빵왕' 쟁탈전이 시작됐다.
여기도 마찬가지로 프랜차이즈 제품은 대부분 반제품이었다. 홍 대표는 이 조그만 우체국 사거리에서 전개된 '제빵왕 쟁탈전'에서 결국 승리했다. 크라운베이커리와 파리바게트, 뚜레쥬르는 모두 문을 닫았다.
홍 대표의 영업방식은 안산에서 했던 것과 동일했다. 프랜차이즈의 반제품 빵에 맞서, 새벽 일찍 일어나 밤늦게까지 일하며 산곡동 주민들이 갓 구은 빵을 맛볼 수 있게 했다.
제일 먼저 크라운베이커리가 자리를 떴다. 그리고 2년 뒤 파리바게트도 문을 닫았다. 그 뒤 크라운베이커리 자리에 다시 파리바게트가 들어섰지만 10년을 버티다 결국 문을 닫았다. 이듬해 2004년 다시 그 자리에 크라운베이커리가 들어섰지만, 1년도 채 안 돼 문을 닫았다. 뒤를 이은 뚜레쥬르도 별 수 없었다.
여간 어려운 상황이 아니었지만, 쉐라메르는 대기업 프랜차이즈 빵집의 공세를 다섯 차례나 막아내며 동네 빵집의 자리를 지켰다.
그리고 이젠 홍 대표의 40년 제빵인생을 그의 아들 홍준표(32) 매니저가 잇고자한다.
홍 대표가 산곡동에 빵집을 낼 때 준표씨는 초등학교 1학년이었다. 이제 어엿한 청년으로 성장했고, 지금은 매니저로서 일을 배우고 있다. 아들은 아버지가 25년 넘게 지킨 동네 빵집을 잘 지킬 수 있을까?
"100일 정도 일했을 때, 내 맘대로 안 되구나 느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