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험관 ‘조선 독립으로부터 71년 후의 우리의 모습.’ 척 봐도 어설픈 화면이 아쉬울 뿐이었다. 조금만 더 자연스러웠다면......
이범희
이런 종류의 시설들 중 가장 인상 깊었던 건 다음과 같았다. 스크린에는 한 독립운동가의 고난이 묘사된다. 시장에서 만세운동을 벌이다가 일본 순사에게 잡혀 형무소로 끌려온다. 모진 고문을 받음에도 굴하지 않고 끝까지 만세를 부르다가 순국하고, 다시 처음으로 되돌아가 만세운동을 벌이는 장면이 나온다.
전형적인 독립운동가의 이야기가 반복되는 가운데, 달라지는 건 그 독립운동가의 얼굴이다. 관람객 한 사람이 스크린 앞에서 사진을 찍는다. 그러면 그의 얼굴이 저장돼 독립운동가의 머리 부분에 뜨게 된다. 이런 식으로 관람객들은 짧으나마 독립운동가의 경험을 공유하게 된다. 체험을 통한 자연스러운 경험의 공유라는 점에서, 다크 투어리즘의 취지와 가장 잘 어울리는 시설이었다.
문제는 기술력이었다. 현대는 과거와는 비교도 안 되는 속도로 기술이 발달하고 있는 시대이다. 영화·드라마·게임 등에서 인간과 거의 차이를 느낄 수 없는 수준의 CG 인간들을 쉽게 볼 수 있다. 그런 기술에 익숙한 현대인인 나에게, 서대문 형무소의 '현대 기술'을 활용한 시설들의 수준은 처참해 보였다.
앞서 말한 독립운동가의 일생을 체험하는 시설의 경우가 대표적이었다. 찍은 얼굴이 검은 네모 박스에 갇혀 독립운동가의 목 위에 올라와 있는데, 억지로 결합해 놓은 모습이 어색하기 그지 없었다. 그 어색한 모습이 나마 제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독립운동가의 몸이 스크린 오른쪽에 가 있을 때 얼굴은 왼쪽에 있다거나 하는 식이었다.
혹시 다른 관람객들은 다르게 생각하지 않았을까. 그래서 간단한 인터뷰를 진행해봤다. 여기에 온 계기가 무엇인지, 조상들의 고초가 느껴지는지의 두 가지였다. 서대문 형무소에 다크 투어리즘의 목적을 가지고 왔는지, 형무소가 그에 걸맞은 체험을 제공해주고 있는지를 묻기 위한 질문이었다.
계기를 묻는 질문에는 'TV에서 봐서 한 번 와봤다' '집에서 가까워서 놀러왔다' 정도의 답이 돌아왔다. 느낌에 대해서는 '별 생각이 없다'는 반응 혹은 느껴진다고는 하는데 다른 곳을 보며 말하는 식이었다. 예상대로였다. 서대문 형무소는 제역할을 못하고 있었다. 꼭 다크 투어리즘이라는 말을 모르더라도, 그 목적에 부합하는 대답을 하는 사람도 있을 법 했으나 한 명도 찾아 볼 수 없었다. 그렇게 나의 답사는 끝을 맺었다.
VR영상, 대안이 될 수 있지 않을까경험이야말로 최고의 스승이라는 말이 있다. 강의실에서는 곧장 조는 아이라도, 자신이 직접 체험한 지식은 쉽게 잊어버리지 않고 체화할 수 있다. 그만큼 체험은 흥미롭다. 실제로 서대문 형무소에서 본 관람객들은 다른 무엇보다도 체험에 가장 큰 흥미를 보였다.
다만 그들이 '슬픔을 공유하고 외부에까지 전파하는' 정도에 이르지 못한 데는 체험의 품질이 떨어지는 이유가 크다. 어떻게 해야 품질을 높일 수 있을까. 그렇게 생각하던 중 한 가지가 떠올랐다. 최근 화제가 되고 있는 VR(가상현실), 그중에서도 노니 데라페냐 엠블로메틱 그룹 대표가 주창하고 있는 VR저널리즘이다.
2015년 4월 미국 오스틴 텍사스대에서 열린 온라인저널리즘 국제심포지엄에서 하나의 영상이 상영됐다. '프로젝트 시리아'라는 이름의 영상으로, 내전 중인 시리아의 모습을 재현한 3D 영상이었다.
체험을 통해 어떠한 기사보다도 시리아 내전의 참상을 느낄 수 있다는 점에서 큰 화제가 됐다. VR저널리즘에 대한 관심은 국내 또한 예외가 아니어서, 현재 <조선일보>가 VR조선이라는 이름으로 업계에 뛰어든 상태다. 필요한 기기의 가격도 내려가서 이제는 휴대전화에서 간단한 타드보드기를 부탁하는 것으로도 VR 영상을 볼 수 있게 됐다.
VR과 다크 투어리즘이 결합한다면 관람객들에게 더 나은 체험을 제공할 수 있지 않을까. 다만 한 가지가 마음에 걸렸다. 카드보드기 정도의 비용으로 이용하는 VR 영상의 수준이 과연 그 정도로 생생할까. 그래서 직접 이용해보기로 했다.
(* 다음 글에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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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크 투어리즘을 아십니까, 한국의 현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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