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뢸러뮐러 국립 미술관 내부전용 미술관으로 지어진 때문인지, 전시실마다 관람이 편하고 여유롭다. 사진 오른쪽은 피카소의 작품이다.
서부원
심심하지 않을 정도로만 굽이진 도로를 따라 바쁠 것 없이 20분 남짓 페달을 돌리다 보면 공원 한가운데에 새뜻한 콘크리트 건물 하나를 만나게 된다. 크뢸러뮐러 국립 미술관이다. 네덜란드 출신인 고흐와 몬드리안을 비롯해 피카소, 밀레, 모네 등의 작품을 전시하고 있는 네덜란드에서도 손꼽히는 미술관이다. 특히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밤의 카페테라스'와 '아를의 다리' 등 고흐의 걸작들을 다수 소장하고 있어서 '제2의 고흐 미술관'으로 불리기도 한다.
숲과 초원의 대지 위에 언뜻 어울릴 것 같지 않은 현대적인 미술관이 들어선 사연인즉슨 이렇다. 20세기 초 대부호로 미술에 눈을 뜨고 수많은 작품을 수집하던 한 여성이 일찍이 남편이 여가를 보낼 사냥터로 구입한 광활한 땅에 미술관을 지은 것이 시초다. 그런데, 1920년대 공황을 겪으면서 빚에 떠밀려 땅은 물론 작품들까지 내다 팔아야하는 상황에 직면하게 된다. 세계 최고의 미술관에 대한 포부가 수포로 돌아갈 위기였다.
이때 그녀는 땅과 작품의 소유권을 포기하고 국가에 일괄 기증하는 방식으로 보전하게 되는데, 사냥터이자 사유지였던 이곳이 국립공원이 되고 작품이 국가 소유가 된 이유다. 1938년 남편과 자신의 성을 따 크뢸러뮐러 국립 미술관으로 정식 개관하자, 작품들을 분신처럼 여겼던 그녀는 초대 관장으로 취임해 사망할 때까지 만 1년 동안 일하게 된다. 한 여성의 미술가적 열정과 그의 꿈을 헤아려준 국가의 합작품인 셈이다.
국립공원 내의 유일하다시피 한 '인공물'이지만, 미술관은 자연에 누를 끼칠 수 없다는 듯 납작 엎드려 있다. 지하에 공간이 전혀 없는 순수한 단층 건물로, 건물을 살포시 공원 빈 터에 올려놓았다는 느낌이다. 더욱이 별로 크지도 않는 주위의 나무들이 동네 친구들인 양 미술관을 감싸고 있어, 외벽의 통유리와 콘크리트 질감도 그리 어색하게 느껴지지는 않는다.
그렇듯 자연친화적인 외양도 놀랍지만, 실내조명과 동선의 배치가 여느 미술관에 비해 훨씬 따뜻하고 여유롭다. 건물을 짓고 난 후 미술관으로 활용한 다른 곳과는 달리, 애초 작품의 내용에 맞도록 설계된 전용 미술관인 까닭이다. 다리가 아파올 무렵이면 공원 내에서 점심을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곳인 구내식당이 나오고, 요기를 하고 나면 건물 밖으로 길이 이어진다.
미술관 뒤편으로 산책길을 내어 따로 조각공원을 조성해 놓았다. 내부 전시실에서 만난 걸작들 때문인지 분위기가 조금은 썰렁하고 초라해 보이기도 한다. 언뜻 그러모은 싸구려인 양 아무렇게나 방치되어 있는 듯한 느낌도 들지만, 그것들 중에는 로댕과 부르델, 헨리 무어, 노구치 등의 작품들도 끼어있다. 미술에 문외한인 내게도 꽤나 익숙한 이름들이다.
크뢸러뮐러 미술관이 없었다면 호헤벨루베 국립공원은 참 공허했을 것 같다. 물론, 미술관도 이곳이 아닌 파리나 암스테르담 같은 도회지의 한복판에 세워졌다면, 그 또한 무언가 허전했을 거다. 자연과 예술은 그렇듯 본디 한 몸이었을까. 호헤벨루베의 품에 안긴 미술관이 그랬던 것처럼, 네덜란드에서 호헤벨루베를 만난 것도 꼭꼭 숨겨진 보물을 찾은 듯한 느낌이었다.
나만의 느낌은 아니었다. 베네룩스의 곳곳을 여행하는 동안 숱한 박물관과 미술관을 찾아 다녔지만, 우리 가족 모두 예외 없이 이곳을 최고로 손꼽았다. 미술관을 넘어 이구동성 가장 기억에 남는 여행지라며, 언젠가 꼭 다시 와볼 거라고 말했다. 여행을 다니면서 새삼 깨닫는 거지만, 화려한 볼거리와 즐길 거리가 많은 곳보다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는 곳이라야 진짜 '관광지'다. 내게 네덜란드는 당분간 호헤벨루베와 크뢸러뮐러로 기억될 것 같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잠시 미뤄지고 있지만, 여전히 내 꿈은 두 발로 세계일주를 하는 것이다.
행복의 무지개가 가득한 세상을 그립니다. 오마이뉴스 박혜경입니다.
공유하기
자동차로는 갈 수 없는 '제2의 고흐 미술관'
기사를 스크랩했습니다.
스크랩 페이지로 이동 하시겠습니까?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