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시내를 걷는 도보단의 행렬.
정영은
도보 10일차, 백남기 농민 국가폭력사태 발생 99일인 20일 일정은 논산시청에서 시작했다. 시내를 관통하는 길이었기 때문에 방송을 하면서 유인물을 나눠드리기로 했다. 아직 열지 않은 가게에 유인물을 넣어두기도 했다. 논산시민들은 무슨 이야기를 하나 멈춰 서서 듣기도 하고, 유인물을 나눠주는 사람들에게 묻기도 하며 관심을 보였다.
이 날은 해프닝이 많은 날이었다. 예상하지 못한 변수들이 생기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지만 머피의 법칙 같은 일이 많은 생기는 날이었다. 너무 한산한 길로 간다며 길을 선회하기도 했으며, 어떤 남성이 도보단에 나쁜 이야기를 하며 도보단 행렬을 영상으로 촬영하자, 화난 농민들과 언쟁이 붙는 일도 있었다.
도보단에 야유하는 국민들을 만나는 일은 가슴 아픈 일이다. 이 여정은 더 많은 사람들에게 백남기라는 농민이 쓰러져 있음을, 이 참혹한 국가폭력에 어느 누구 하나 책임지는 이 없음을 알리기 위한 길이었다. 그런데도 정부와 언론이 보여주는 현실만을 믿으려는 국민들을 만나면 우리가 얼마나 더 많이 걷고 많은 사람들을 만나야 하나 하는 복잡한 생각이 든다.
오후에는 차량으로 대전으로 이동해야 했다. 논산에서 대전은 하루를 꼬박 더 걸어야 하는 거리. 저녁에 있을 100일 문화제에 참석하기엔 시간이 빠듯했다. 대전 시내를 걸으며 도보순례의 의미를 알리고 더 많은 사람들과 문화제에 참석하기 위해 계룡을 건너 대전으로 향했다.
이동 중에도 해프닝이 발생했다. 오후 2시 반, 서대전시민공원에서 으능정이 문화의 거리까지 걷고 대전에서 도보에 참석하시는 분들을 만나 다시 문화제가 진행될 대전시청까지를 걷는 일정으로 알고 있었는데, 2시 대전의 시민사회단체 분들과의 간담회 일정이 있었던 것.
도보단은 부랴부랴 차를 돌려 간담회 장소로 향했다. 간담회에는 대전의 많은 시민사회단체 대표뿐만 아니라, 세월호 가족들도 참석해 있었다. 유경근 세월호 대책위 집행위원장은 "세월호나 백남기 투쟁이 외로운 싸움이 되는 것은 이것이 자신에게도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고 보지 않기 때문"이라며 "1프로의 국민의 마음을 얻어내기 위해 함께 싸우자"고 이야기 했다.
한편, 간담회에 참석하지 않은 일부 도보단은 으능정이 문화의 거리에서 자체 선전전을 진행하였다. 젊은이들의 거리인 으능정이 거리에서 도보단의 이야기를 듣던 젊은이들은 무슨 일인지에 대해서 묻기도 했다. 한 젊은이는 100일이라는 시간이 되도록 어느 누구 하나 사과하고 있지 않다는 말에 "윗선에서 묵인하겠다는 거네요?"라고 답변하며 도보단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간담회를 마치고 난 후 200여 명의 참가자가 모여 으능정이 거리에서부터 대전시청까지 행진을 벌였다.
방송차량에서는 '백남기 농민을 아시냐?'는 질문으로 시작해 지난 11월 14일에 있었던 국가폭력 사건과 이후 아무도 책임지지 않고 있는 현실에 대해 이야기했다. 도보순례단은 거리의 시민들에게 유인물을 나눠주며 관심과 참여를 부탁했다. '백남기를 살려내라', '살인진압 책임자를 처벌하라', '경찰청장 파면하라', '대통령이 책임져라'는 구호를 외치며 대전시내를 걸었다. 많은 기자들도 도보단에 관심이 집중되었다. 바른 목소리를 내는 기자들이 우리의 목소리를 많이 실었길 바라며 걸음을 옮겼다.
지금 농민은 단결만이 살 길중부권에서는 다양한 지역에서 온 농민들도 함께 했다. 보령군 주포면에서 20년째 농사짓고 있는 이종협씨는 3만평 쌀농사를 짓고 있다. 그는 작년 쌀값 폭락의 문제가 매우 심각했는데, 농민들이 대응하지 않는 것에 걱정이 많았다. 보령의 경우 다행히 수매 자체에 어려움이 발생하지는 않았으나, "수매가격이 떨어지는 문제가 있었다"고 했다.
산지 조곡 40kg가 4만5천 원 선에 수매되었고, 지난해 대비 1만 원이 떨어진 가격에 수매되었다고 했다. 물가상승률이나 생산비를 고려해서 가격이 책정되어야 하는데 생산비도 보장되지 않는데다가 교육비 등의 고정비용은 계속 늘고 있는 현실에 대해 토로했다. 어려운 현실을 극복하기 위해 농민들이 택하는 방법은 광작, 즉 규모화라는 말도 덧붙였다. 평균가가 떨어지니 생산량을 늘려서 나머지를 보존하려 하기 때문에 계속 농지규모를 늘리게 되고 자동적으로 일도 많이 늘게 되었다고도 했다.
"쌀값을 결정하는 방식에 대해서도 사실 농민들은 잘 모르고 있지요. 전국 평균가격을 잡아서 계산한다. 이런 것들요. 또, 순수하게 산지 쌀값을 적용해서 계산해야 하는데 미곡종합처리장(RPC)에서 가공하는 가격까지 다 포함시켜서 생산가를 잡으니, 농민들에게 돌아오는 것이 훨씬 적다는 사실도 잘 모릅니다." 그는 "가장 크게는 외국 쌀을 수입하지 말아야 한다"며 "남북교역을 통해 남는 쌀을 해결하는 것도 방안"이라고도 덧붙였다.
전주에서 온 장종혁씨는 귀농 11년차 농부로 블랙베리, 오디, 곶감 등의 농사를 짓는다. 베리류의 가격이 많이 떨어져 어렵지 않느냐는 질문에 "가격 떨어진 것이 문제가 아니라, 가격이 의미가 없다"고 답했다.
덧붙여 가격이 왜 떨어지는 것 같느냐는 질문에 "서민들이 먹고 살기 힘든 것이 가장 큰 원인이라고 생각한다"며 "소비를 해야 할 서민들이 먹고 살기 힘드니 당연히 모두가 어려워지는 것 같다"고 했다. 덧붙여 "대기업들이 수입농산물 특히 수입과일을 사용해서 먹거리를 만들어내고, 그것이 국민들에게도 영향을 준다"며 "정부 정책을 자신의 입맛에 맞게 만들어 이용하거나 투기를 통해서 돈을 버는 1%의 대기업들이 농민들과 국민들의 삶을 힘들게 하는 것"이라고도 했다.
그는 "단결만이 살 길이야, 농민들도 국민들도 단결해야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어"라고도 이야기했다. 도보 초반에도 참석했던 그는 도보순례를 시작하던 날 광주교구의 이영선 신부의 말씀을 실천하고 있다고도 했다.
"하루에 한 사람씩만 사귀라, 그것이 정부가 제일 싫어하는 일이라고 하시더라고. 그래서 여기에 오면 꼭 사람을 사귀고 있어."함안에서 토마토농사를 짓는 한승아씨는 눈치를 보며 작물에 심게 되는 현실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농사가 변수가 많아지고, 내수용은 특히 가격 폭이 커지다보니 서로 눈치를 보며 작물을 심게 되었다"며 "토마토 농사를 짓는 사람들이 농사를 망치게 되면 (생육기간이) 짧은 오이를 심는다, 오이는 한 달에서 한 달반이면 수확을 할 수 있으니까"라고 했다.
농사를 망치게 되는 원인에 대해 물었더니 "기후변화 때문"이라며 "예전에는 겨울에 건조했는데 요즘은 따뜻하고 습해지다보니 농작물에 곰팡이병 같은 것이 많이 생겼다, 역병 같은 것도 많이 생겨 한 타임의 농사를 쉬게 되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대통령이 사과하는 날, 춤을 추기로 기약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