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16일 오전 국정에 관한 국회 연설을 하기 위해 국회 본회의장으로 입장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그가 대통령에 취임한 이후 늘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 의문 중의 하나입니다. 국가시책이나 국정운영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어디나 있기 마련입니다. 당연합니다. 사람 생긴 모양이 다 다르듯 생각 또한 각양각색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찬반이 나뉘는 첨예한 사안이 합리적으로 의사결정이 되려면 토론의 과정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토론은 상대방을 설득시키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박 대통령의 국정운영에는 상대방을 설득시키는 토론의 과정 자체가 배제되어 있습니다. 일방적으로 결정하고 따라오라는 식입니다. 대화와 타협의 과정이 없이, 최소한의 설득의 과정도 없이 결정에 무조건 수긍하라는 태도는 권위주의적 성향을 지닌 리더의 숙명과도 같습니다. 박 대통령이 집권한 이후 국론이 분열되고 논란이 끊이질 않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21세기 민주주의 시대에 20세기 권위주의 시대의 통치 방식을 끌어 쓰고 있기 때문입니다.
박 대통령은 기자회견에서조차도 토론을 하지 않습니다. 미국 대통령이 기자들과 질의를 주고받으며 토론식으로 기자회견을 하는 것과는 아주 대조적입니다. 토론 대신 박 대통령은 미리 준비된 각본대로 질문을 받고 답을 합니다. 그가 토론을 기피하는 이유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합니다. 그러나 그에게 국정의 주요 쟁점을 이해하고 이를 설득할 능력이 부족하기 때문이라는 것이 일반론입니다. 상대방의 돌발적인 질문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없기 때문에 토론을 기피하는 것이라고 분석하는 것이죠.
그러나 본질적인 이유는 어쩌면 따로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가 토론의 과정 자체를 불필요하다 여기고 있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입니다. 박근혜 정부에서 이루어진 의사결정 과정이 이를 뒷받침합니다. 최근 연달아 논란이 되고 있는 국정교과서, 위안부 협상 타결, 사드 도입과 개성공단 중단 같은 논제만 보더라도 이는 대통령과 정부 여당이 일방적으로 밀어붙일 사안이 아닙니다.
교과서 문제와 위안부 문제, 남북관계 문제는 정권을 떠나 장기적 비전을 가지고 심도 있게 논의해야 할 국가적 의제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처럼 중차대한 사안이 대통령과 정부 여당의 일방적인 결정으로 일단락되었습니다. 이럴 것이라면 민의의 전당인 국회가 존재할 필요가 없는 것이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