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서울경인공공서비스지부(서경지부)의 9차 집단교섭이 서울여자대학교에서 이뤄졌다. 노사가 교섭을 하고 있는 모습이다.
김동수
"이게 무슨 교섭이에요?"서경지부 교섭위원의 외침이었다. 이날도 8차와 달라진 게 없었다. 지금하고 있는 이야기도 사실은 지난주에 했던 말을 다시 반복하는 것에 불과했다. 역시나 지난번 임금 제시안을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내세웠다. 정말 성의 없는 교섭이었다. 노동자들은 답답한 속내를 토로했다.
지난 교섭을 되돌아봤다. 사측은 매번 일주일이란 시간을 더 주면 임금안이 나올 듯이 이야기해왔다. 하지만 순간을 모면하려는 꼼수였다. 다음 교섭 때 또 똑같은 말을 반복하기 때문이다. 사측은 시간을 적당히 보내려는 모습을 여과 없이 보여줬다. 협상은 주고받는 것이다. 그럼에도 사측이 지난 8차안을 계속 고수하는 데 무슨 논의를 해야 하는 걸까.
노동자가 무슨 말을 해도 묵묵부답이었다. 대표 말고 다른 위원들은 아무 이야기도 하지 않는 게 일반적이었다. 이야기를 해도 아무 말이 없는 사측 교섭위원들의 모습에 모멸감이 느껴졌다. 교섭 자리에 앉아 있는 노동자들은 얼마나 답답했을까.
교섭을 하면 정회는 기본이었다. 약속한 정회 종료 시간을 넘길 때도 부지기수였다. 이를테면 교섭을 시작한 지 30분도 채 지나지 않았는데, 사측 교섭대표가 정회를 주장한 적도 있다. 사측끼리 모여 공통된 임금안을 만들겠다는 게 명분이었다. 서경지부 교섭대표가 사측의 공통 임금안을 조율하라고 일부러 정회 시간을 더 연장해준 경우도 있다. 하지만 돌아온 대답은 원청과 상의 없이 임금안을 제시하기 힘들다는 입장이었다.
그렇다. 사측은 매번 핑계를 댔다. 주로 원청이 대상이었다. 원청 담당자에게 이야기해도 어떤 확답을 주지 않는 것이 이유였다. 맞다. 원청과 도급 계약을 맺은 용역업체가 마땅히 제시할 대안이 없는 것도 사실이다. 용역업체에 일을 주는 사실상의 원청인 대학이 뜨뜻미지근한 태도를 취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원청과의 관계를 이유로 협상에 제대로 임하지 않는 모습은 비판받아야 마땅하다.
"처음 교섭에 참석하니 많이 생소해요. 3, 4차 교섭 때는 임금·단체협약이 금방 합의될 줄 알았어요. 그런데 인간적으로 교섭에 나올 줄 알았던 사측이 터무니없는 이야기를 하니, 어이가 없었어요. 우리를 너무 하찮은 존재로 보고 인격을 무시하는 것 같았어요. 정말 가슴 아픈 현실이죠. 씁쓸하기도 하고요. 참 비애감을 느껴요."숙명여대분회 심현주 분회장(서경지부 교섭위원)의 말이다. 아무 준비 없이 교섭에 참석한 사측의 모습을 보면, 실망감이 밀려온다. 내가 생각한 교섭과 전혀 다른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예닐곱 차례의 교섭으로 노사 간의 합의안이 도출될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순진한 생각을 갖고 교섭을 참관한 것 같다. 섣부른 기대는 깊은 허탈로 이어졌다. 매 교섭 때마다 한숨이 절로 나왔다. 사용자 집단의 교섭 태만은 정도를 넘어섰다. 지난 4, 5차 교섭을 함께 참관한 박아무개 씨(홍익대 재학)도 사측의 불성실한 교섭 태도에 혀를 찼다.
나는 지난 7차례의 교섭 자리에 왜 앉아 있었는지 잘 모르겠다. 지금 생각해보면, 시간이 아까웠다. "성실히 협의해야 한다"는 노동법의 문구는 허울 좋은 말이었을까. 아마도 사측은 '성실한 교섭 참석' 자체가 '성실한 협의'라고 생각하는 건 아닐는지. 그런데 '성실한 교섭 참석'조차 하지 않는 업체를 노동자들은 어떻게 받아 들여야 하는 걸까. 노동조합법 제30조 제1항을 보면, 노동조합과 사용자(단체)는 성실히 교섭에 임해야 한다.
'성실한 교섭'의 필수조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