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대 심수관
유혜준
심수관요(窯)의 시작은 정유재란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임진왜란 이후에 다시 조선을 침략한 일본. 정유재란이었다. 1597년 8월 13일, 시마즈 요시히로, 고니시 유키나카, 가토 기요마사는 5만 6천여 명의 일본군을 이끌고 남원성을 공격한다. 당시 남원성을 지키는 병력은 조선군과 명나라 군사를 합해도 고작 4천여 명이었다고 한다. 성이 함락되는 건 시간 문제였으리라.
남원성이 함락되면서 일본 도자기 역사는 새롭게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때 심당길(沈當吉)을 포함한 조선도공 80명이 사쓰마로 끌려왔기 때문이다. 시마즈번의 번주 시마즈 요시히로가 그들을 사쓰마로 보냈다. 이후 심당길 등은 사쓰마 미야마 마을에서 도자기를 만들기 시작했고, 그 역사는 현재의 15대 심수관(沈壽官)까지 이어지고 있다.
정유재란 때 일본으로... 청송 심씨, 남원이 고향인 '심수관요'2월 12일, 규슈올레를 걸으러 가는 길에 미야마 마을의 사쓰마야키에 들러 심수관요(窯)를 둘러보았고, 15대 심수관을 만나 인터뷰를 하는 행운을 누릴 수 있었다. 15대 심수관의 설명에 따르면 심수관요의 전성기는 12대 심수관 때였다.
도자기로 세계에 이름을 날린 12대 심수관은 아들에게 '심수관'을 이어받으라고 했고, 그렇게 해서 13대 심수관이 나올 수 있었고 그 이름은 지금까지 세습되고 있다.
봄비가 촉촉이 내리는 심수관요의 정원에는 홍매화가 화려하게 피어 있었다. 한국은 겨울인데, 제주보다 남쪽에 있는 가고시마는 완연하게 봄기운이 흐르고 있었던 것이다.
일본 와세다 대학을 졸업하고, 이탈리아에서 유학을 한 15대 심수관은 한때 우리나라 여주에서 1년간 옹기 제작을 배운 적도 있단다. 그가 31살 때다. 그는 1999년에 15대 심수관의 이름을 이어받았다. 그의 다른 이름은 심일휘(沈一輝). 심수관요는 시조인 심당길부터 지금까지 한 번도 대가 끊긴 적이 없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