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수원시 수원화성의 활쏘기 터.
김종성
농부들의 반응에 아랑곳없이 이성계는 활시위를 당겼다. 비둘기 두 마리가 바닥에 뚝 떨어졌다. 잔뜩 긴장하고 있었을 농부들은 순간적으로 감탄사를 터뜨렸다. 그들은 이성계한테 활을 참 잘 쏘신다고 칭찬했다. 바로 이 칭찬을 이성계는 외모에 대한 칭찬으로 잘못 받아들였다.
농부들은 이렇게 말했다. "대단하네요! 도령의 활솜씨가!" 약간 문제가 있는 말이기는 하지만, 이것은 분명 활솜씨에 대한 칭찬이었다. 하지만, 이성계는 농부의 말에서 '도령'이란 표현에만 주목했다. "대단하네요! 도령의 활솜씨가!"라는 말을 "○○○○○! 도령의 ○○○○!"로 들었던 것이다.
보통은 미혼 남성을 도령이라고 불렀다. 흔히 10대에 결혼했으므로, 도령이란 말을 듣는 남자는 일반적으로 10대였다. 이성계는 활솜씨에 대한 칭찬보다는 자신이 도령으로 불렸다는 사실이 너무 좋았다. 수많은 전쟁에서 승리한 명장이지만, 그 말에 기분이 너무 좋아 그는 순간적으로 우쭐해졌다.
농부들의 말을 듣는 순간, 이성계의 얼굴에는 화색이 돌았다. <태조실록>에서는 이성계의 얼굴에 웃음기가 돌았다고 기록했다. 순간적으로 기분이 좋아진 이성계는 농부의 말에 동문서답했다. 활솜씨에 대한 칭찬은 못 들은 척 하고 외모에 관한 대답을 한 것이다. 이성계의 답변은 "내가 도령은 진작 지났지"였다. 자신이 동안으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나이가 들었다는 점을 알려준 것이다.
이성계는 자기를 도령으로 불러준 농부들이 너무나 고마웠다. 농부들은 외모를 칭찬할 의도가 없었지만, 이성계는 그들이 자기 외모를 칭찬했다고 생각했다. 이성계는 그런 그들을 그냥 두고 길을 떠날 수 없었다. 그래서 그들에게 한 가지 제안을 했다. 자기 부하가 될 의향이 있느냐고 물어본 것이다. 농부들은 기꺼이 받아들였다.
이 두 농부가 몇 년 뒤에 조선의 개국공신이 되는 한충과 김인찬이다. 특히 김인찬은 개국 일등공신이 돼 왕족급인 익화군이란 작위에 책봉됐다. 김인찬은 양근 김씨의 시조가 됐다.
이성계가 두 농부의 말을 듣고 속으로만 기분이 좋았다면, 그래서 그냥 발걸음을 재촉했다면, 그날 벌어진 이야기가 역사 기록에까지 남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어쩌면 아무것도 아닐 수 있는 말에 이성계가 예민한 반응을 보였고 그걸 계기로 두 농부가 이성계의 부하가 됐기 때문에, <태조실록>에까지 기록될 수 있었던 것이다. 이성계의 부하가 된 두 농부가 훗날 개경 사람들에게 그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면, 대화 내용이 실록에까지 기록될 수는 없었을 것이다.
'뽀얀 피부' 선망했던 조선 사람들시간이 흘러 1653년에 하멜이라는 네덜란드인이 조선에 표류했다. 위의 에피소드가 있은 지 270년 뒤였다. 하멜은 제주도·전라도·충청도·경기도를 거쳐 한양에까지 갔다. 이때 조선 남자들이 딱 한 가지, 하멜을 부러워한 것이 있었다. 그것은 하멜의 하얀 피부였다.
<하멜 표류기>에 따르면, 하멜의 하얀 피부에 대한 소문을 듣고 그의 숙소까지 쳐들어가는 남자들이 많았다고 한다. 그중에는 평민뿐만 아니라 고위층 남성들도 많았다고 한다. 유교를 공부한 선비 출신 남자들도 이국인의 뽀얀 피부에 관심을 가졌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