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겉그림
한티재
착취자의 기준은 효율성이고, 양육자의 기준은 돌봄이다. 착취자의 목표는 돈, 즉 이윤인데, 양육자의 목표는 건강이다. (29쪽)
식량울 무기로 생각하든가 또는 무기를 식량으로 생각하면 소수의 사람들에게 안보와 부의 환상을 심어 줄는지 모르겠지만, 그런 사고방식은 모든 사람들의 생명을 직접적으로 위태롭게 만든다. (34쪽)웬델 베리 님이 빚은 <소농, 문명의 뿌리>(한티재,2016)라는 책을 읽습니다. 한때 교수로 일하다가 이 교수 일을 접은 뒤에 농사꾼이 되었다는 웬델 베리 님이라고 합니다. 도시에서 지식인으로 지내던 살림을 고이 접은 뒤, 시골에서 농사꾼으로 지내는 살림으로 거듭난 웬델 베리 님이라지요.
도시하고 시골을 온몸으로 겪은 삶이요, 도시하고 시골에서 온몸으로 일한 삶이기에, 웬델 베리 님이 쓴 <소농, 문명의 뿌리>라는 책에서는 두 문명이 어떻게 다른가 하는 대목을 처음부터 끝까지 낱낱이 짚습니다. 사람들이 도시에서는 무엇을 보고 느끼고 배우는가 하는 대목을 건드리고, 사람들이 시골을 등지면서 무엇을 잃고 잊고 놓치는가 하는 대목을 살핍니다.
전문가가 주도하는 시스템의 가장 잘 알려진 첫 번째 위험은, 많은 비용과 수고를 들여 한 가지 일만을 하도록 훈련되는 사람들, 즉 전문가들이 만들어진다는 점이다 … 예방에는 아무 기술도 관심도 없는, 질병에 대해 값비싼 치료책에만 능숙한 의사들이 생겨난다. (51쪽) 미국 시민들은 "노동력의 96퍼센트는 식량 생산으로부터 해방되었다"는 말을 기꺼운 마음으로 경청한다. 그러나 미국 시민들은 노동력이 '해방'된 것은 무엇을 위한 것인지, 또는 그 결과 얼마나 많은 이들이 어떤 형태로든 고용으로부터 해방되었는지에 대해서는 묻지 않는다. (79쪽)<소농, 문명의 뿌리>라는 책에서 크게 짚는 대목을 꼽자면 '앗기·돌봄'입니다. 웬델 베리 님이 두 가지 문명을 두루 겪고 살아낸 나날을 돌이킨다면, 도시살이는 '앗기'요, 시골살이는 '돌봄'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오늘날에는 시골살이도 '앗기'랑 '돌봄'으로 갈린다고 해요. 한집 사람들 살림을 짓는 "작은 보금자리"가 아니라 "엄청나게 커다란 농장"을 수많은 기계와 화학비료로 '운영 관리'할 적에는 '앗기'라는 문명이 된다고 해요.
'대규모 농장'은 땅에 땅힘을 되살리도록 북돋우지 않고 '더 많은 생산량'에만 목을 매단다고 합니다. 아마 이러한 대목은 여느 도시 이웃도 웬만큼 알리라 생각해요. 이를테면, 양계장 아닌 닭공장에서는 수십만 마리 닭이 옴짝달싹 못하면서 밤낮조차 없이 아주 빠르게 살이 찌다가 죽어야 합니다. 알 낳는 닭도 하루 내내 전구 밑에서 알만 낳지요. 돼지우리나 소우리 아닌 돼지공장이나 소공장이 되고 만 커다란 짐승우리에서도 돼지이며 소이며 옴쭉달싹 못하면서 그저 살만 빨리 찌우다가 죽어야 하는 얼거리예요.
이 같은 이야기는 방송에서도 곧잘 다룹니다. 그렇지만 이 같은 모습은 안 달라집니다. 왜냐하면, 사람들 스스로 제 밥을 제 손으로 일구는 삶하고 아주 멀어졌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