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인기 작가가 만난 '목도리 할머니'가 책 속에서 환하게 웃고 있다. 최인기의 <그곳에 사람이 있다> 책 갈무리
나름북스
재개발로 마을이 사라지고, 아이들 재잘거리며 뛰놀던 골목은 벽화가 그려지며 관광 상품이 되는데도 여전히 그 안에는 아픔과 고통을 감수해야 하는 우리 이웃이 있음을 짚어낸다. 오래된 미로로 유명한 서울의 인사동 골목, 탑골공원, 황학동과 을지로 공구 상가, 안양 덕천마을 등을 사진과 함께 소개한다.
이어 청량리 전통시장과 '목도리 할머니'의 가락시장, 부산 자갈치시장, 기장시장 등을 그 특별한 사연과 함께 알려준다. 특히 부산의 중구 보수동 헌책방 골목과 영도구 영선동 해변가 언덕의 흰여울길을 소개해줄 때는 마치 내가 그 길을 걷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다. 이 외에도 연제구 물만골과 감천동의 과거와 미래를 연결한 이야기는 맘껏 기대감을 높인다.
다시 작가는 기억을 더듬어 하늘 끝 달동네들을 소개한다. 종로의 벽화가 있는 성곽마을 풍경, 이화동과 창신동의 달동네, 삼선동 성곽 끝 장수마을, 석관동 고래심길 등을 만날 때는 서울에도 이런 곳이 있었나, 의아할 정도다.
책을 읽으며 그저 흥미롭게만 느낄 수 없는 건 그 속에 진한 인생의 질곡들이 있었다는 것이다. 아니 지금도 여전히 인생이 버거운 사람들이 사라지는 옛 구조물들 속에 파묻혀 숨죽이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종종 매스컴에서 만나는 이웃들의 질펀한 삶에 박수를 보내며 좀 더 나은 삶을 기대하기도 한다.
하지만 현실은 그리 쉽게 변하지 않는다는 것을 책을 통해 새삼 깨닫는다. 옛 정취는 자꾸만 사라지는데 정겨운 그들의 삶은 더욱 팍팍하기만 하다. 경제발전과 눈부신 산업화가 외려 우리네 서민들에게는 목줄을 옥죄는 수단이 되고 만다.
책은 TV에 가수 이승기가 출연하여 벽에 그려진 하얀 날개 그림에 몸을 대고 사진을 찍어 유명해진 이화동 골목길의 '천사의 날개' 이야기를 전해준다. TV를 본 이들이 너도나도 카메라를 메고 달려 와 금방 골목길은 왁자지껄한 곳이 되었고 주민들의 삶의 질을 확 떨어뜨리고 말았다. 결국 '천사의 날개'는 지워졌다.
우리들의 냄비근성이 자아낸 '웃픈'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정겨운 골목길, 삶의 냄새 짙게 풍기는 시장, 버거운 삶이지만 달동네의 진한 향수 등이 그대로 보존되었으면 하는 게 내 바람이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는 게 서운하다. 벽화마저 그대로 보존할 수 없으니 말이다. 작가의 일갈을 들으며 글을 마치려고 한다.
"연예인의 흔적을 찾는 것도 좋지만, 오래된 마을 안에서 소박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채취를 함께 느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그곳에 사람이 있다> 180쪽"벽화가 그려지고 사람들이 찾기 시작해 카페나 술집이 생겨나면서 월세도 덩달아 올라 현지 사람들이 다른 곳으로 밀려나는 현실이 반복돼선 안 될 것입니다. 원래 살던 사람들이 편히 살 수 있게 해주는 것, 오래된 골목길의 벽화가 주는 교훈입니다."- <그곳에 사람이 있다> 149쪽
그곳에 사람이 있다 - 오래된 미로, 도시 뒷골목
최인기 지음,
나름북스,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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