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한 스튜디오에서 진행된 홀로그램 집회에서 참여자들이 평화 집회 보장을 요구하는 장면을 촬영하고 있다.
유성호
'넘나 좋은 집회 시위''우리는 유령이 아니다, 우리는 시민이다''2년이 18년 같다. 아무 것도 하지마라'5명, 또는 10명씩 나뉜 참가자들은 저마다의 손팻말을 들었다. 즉석에서 쓴 글귀부터 집에서 미리 준비한 그림, 현수막까지 각양각색이었다. 노랑, 주황 따뜻한 색채의 유화 그림 위에 '소녀상 철거? 감히 조건을 내건 사죄가 대체 무슨 사죄입니까'를 써넣은 작품을 들고 선 대학생 이지원(27)씨. 그는 위안부 피해자 한일 합의에 반대해 광화문 앞에서 피켓 시위를 열기도 했다.
이날 촬영을 위해 1시간을 대기한 그는 "헬조선, 헬조선 이야기하는데, 우리 스스로 나서지 않으면 바뀌지 않을 것 같다"며 "말로 하는 것보단 직접 나서는 게 좋다고 생각했다, (홀로그램 시위) 기회가 생겨 지원하게 됐다"고 전했다.
준비한 플래카드에 초록색과 파란색이 섞여 있어 크로마키 촬영 특성상 펼치지 못한 참가자도 있었다. 크로마키 촬영은 초록색 계열의 색이 화면에서 사라진다.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반대하는 신진 역사학자들의 모임인 만인만색의 공동대표 이성호(33)씨는 "함께 오기로한 분이 오지 못해 깃발이라도 펼치려 했는데 아쉽다"면서 "재밌을 것 같다는 생각에 참여하게 됐다, 내가 직접 (집회 장소에) 못 가도 내 그림자, 내 분신이 참여하게 하자는 생각으로 왔다"고 말했다.
"시민이 원하는 것은 평화롭고 자유로운 집회입니다. 그런데 경찰은 차벽과 물대포로 시민을 막고 있습니다. 심지어 백남기 농민은 (경찰의 물대포로) 목숨이 위험해진 상태임에도 아무도 책임지지 않습니다. 시민들의 자유로운 집회를 보장하십시오."확성기를 들고 버벅거림 없이 멘트를 읽어내려가는 김샘(23)씨. 친구와 함께 신청했다가 선착순 제한으로 본인만 오게됐다는 그는 소녀상을 지키며 밤샘 노숙 농성을 이어온 평화나비네트워크 대표이기도 하다. 그는 "마이나 키아이 유엔특별보고관이 소녀상도 다녀갔다, 이후 쭉 집회의 자유를 생각해봤다"면서 "집회는 허가제가 아니라 신고제인데, (한국 사회에선) 거부 당하는 부분이 많다, (이번 홀로그램 집회도) 그 항의 표시의 의미가 있다고 알고 있다"고 전했다.
유령집회 기획에 참여한 장덕현 앰네스티 이슈커뮤니케이션 간사는 지난 1월 마이나 키아이 유엔 특별보고관이 지적한 한국의 평화 집회와 결사의 자유 후퇴 상황을 언급하며 "집회 시위는 헌법에서 보장하고 있지만, 잘 실현되지 않고 있는 현 상황에 대해 일종의 항의하는 차원에서 집회를 기획하게 됐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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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앰네스티 한국지부는 지난달 25일 서울 종로구 청운효자동주민센터 앞에서 홀로그램 집회를 열겠다고 신고했지만, 교통 방해를 이유로 금지 통고를 받았다. 뿐만 아니라 경찰 측이 직접 앰네스티 측에 홀로그램 집회에 대한 우려를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의 연락을 직접 받은 한 앰네스티 관계자는 "경찰 쪽에서 전화로 '집회인지 아닌지 고민했다'며 일단 허가하겠다는 통보를 했다"면서 "경찰이 스스로 신고제가 아닌 집회 허가제를 시안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홀로그램 집회는 문화 행사로 등록돼 있고, 장소 자체가 서울시청 관할이기 때문에 경찰이 감독할 사항이 아니다"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