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집
pixabay
상점들이 자주 바뀌는 이유는... - 이 일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별 거 없다. 흘러가는 대로 살다 보니 그렇게 됐다. 내가 조리과 출신이다. 식음료 파트가 돈이 되는 편이라 관심이 있었다."
이만큼이나 성공한 사람이면 거창하게 자신의 행적을 늘어놓을 만도 한데, 그는 예외였다. 다른 사람의 얘기라도 하듯이 건성으로 대답하였다.
- 국가로부터 청년 창업 지원을 받아본 적이 있는가? "국가에서 술집은 인정 안 해준다. 요즘은 요리사에 대한 시선이나마 좋아졌지, 술집은 그나마도 아니니까. 지금의 모습까지 오기 힘들었다. 10년 전 처음 일 시작했을 때는 월 60 받고 일했다. 몇 달 후에 80으로 올랐고, 지금은 거기서 두 배가량이다. 알다시피, 기술직이란 게 열정 페이가 심한 편이다. 패션, 디자인 모두 150도 못 받는 곳이 대부분이니."
- 현재 사업의 상황은 어떤지?"나쁘지 않다. 꾸준히 가게는 유지하고 있으니까. 사람마다 기준은 다를 수 있다. 금액에만 포커스를 맞추면 적긴 하다. 하지만 내가 성취감을 느끼고 있으니 괜찮다고 본다. 보통 창업하는 사람들은 얼마나 버는지에만 집중하는 편인데, 내가 어떤 일을 할지에 대해 먼저 생각해야 한다고 본다. 우리 사회의 가장 큰 문제가 빈익빈 부익부다보니 다들 그렇게(돈만) 생각하는 것 같지만."
- 왕십리의 상점들이 자주 바뀌던데 그 이유가 무엇인지 짚이는 데가 있나? "자영업자가 10명 있다 치자. 이 중 1년이 지나면 30% 정도만 남는다. 5년 후에는 10%가 남고, 10년 후에는 그 10% 중에서도 10분의 1만 살아남는다. 여기에는 내부적 요인과 외부적 요인 두 가지가 있다. 전자의 경우에는, 일단 몇 년씩이나 같은 일을 하다 보면 귀찮아진다. 그러다보니 사업자들이 직원들은 물론이고 자기 자신에 대한 관리도 잘 안 하게 된다. 후자의 경우, 아무리 단골이라도 10년씩 같은 가게에 호감을 가지기는 어렵다. 원래부터 그랬지만, 최근에는 그런 경향이 더욱 심해지는 느낌이다."
원래부터 창업은 모험이라 생각해왔으나, 현실은 더한 거 같다. 청년 창업자를 포함한, 창업자의 70%가 일 년 안에 망한다는 그의 말이 무겁게 느껴졌다. 정작 당사자는 아무런 표정의 변화도 보이지 않았지만. 후에 이 인터뷰와는 별개로 전 직원이었던 J(29)와도 만남을 가졌다. 그는 B주점이 다른 가게와 달리 자체적으로 개선하는 노력을 계속해왔다고 말했다.
"한양대 미대 학생들이 그린 그림을 무료로 바에 전시해 주었어요. 손님이 그 그림을 마음에 들어 하면, 팔아서 받은 돈을 그대로 학생들에게 전해 주었고요." 학생들은 전시 공간을 얻는 데다가 그림이 팔리면 그 수익도 받고, 점포는 인테리어 비를 아끼니 서로 상부상조였다고 했다.
"사업은 시대상황에 달려있어... 망해도 어쩔 수 없다"- 사업하면서 가장 힘든 일은 무엇인지?"어디나 마찬가지겠지만, 사람이 가장 힘들다. (종업원들을 말하는 거냐는 질문에) 내가 자리에 없어도 잘 돌아가려면 교육을 해야 한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종업원끼리 직장 내에서 서로를 경쟁 상대라 여기게 되는 경우가 있다. 서로 간에 보이지 않는 유리벽을 치고 있다고나 할까? 이럴 때는 내가 직접 그렇지 않다는 걸 보여줘야, 그 유리벽을 무너뜨리게 된다. 그런 과정들을 겪다보면, 좋은 직원들이 남고 나 자신도 성장하게 된다."
J에게 D의 대답처럼 직원 간에 경쟁심을 가지고 있었느냐고 물었다. "저는 알바라서 직원은 어떤지 잘 몰라요. 다만 오래 일한 알바들의 경우에는 있었어요." 비싼 술을 주문하는 손님을 받은 알바는 그에 상응하는 인센티브를 받는다. 그래서 오래 일해서 일에 익숙한 알바들 간에 경쟁이 일어난다는 것이었다.
- 직원들을 관리하는 방법이 있는가."이거 해라 저거 해라 하면 마음으로 따르지 않는다. 내가 솔선수범해야 감화가 된다. 그리고 돈 많이 벌려는 게 아니라, 어떻게 해야 좋은 사람이 되는지에 대해 얘기해야 한다. 물론 돈도 중요하긴 하지만, 복지와 비전이 함께 가야 한다. 당근만으로는 종업원들이 행복해하지 않는다."
역시 J에게 물어보았다. "저 같은 알바들에겐 교육 쪽이 더 도움이 된 거 같아요. 매장에 업무 관련 서적이 비치되어있는데, 그걸 읽은 게 많은 도움이 되었거든요." 여기서 배운 게 이왕이면 나 자신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일했다는 게 그의 대답이었다. 방향은 조금 달랐지만, 넓게 보면 비전을 중시한 셈이니 D의 말이 틀린 건 아니었다.
- 앞으로의 전망은 어떤지?"나 자신의 경우에는, 돈은 잘 못 벌더라도 행복할 거 같다. 행복에는 창조와 관계의 두 가지가 있다. 돈 버는 거와 가족·친구와의 관계를 말하는 거다. 나 자신은 후자로 인해 더 행복해지고 있다는 느낌이다. 사업이 잘 되면 좋지만, 안 되면 어쩔 수 없는 거다. 사업의 경우에는... 손자병법에 이런 말이 있다. "지지 않는 건 나에게 달렸으나, 이기는 건 하늘에 달렸다." 그렇듯이 사업이 잘 되는 건 시대상황 같은 외부 조건에 달렸다고 본다. 그러니 망하더라도 어쩔 수 없고, 내가 올바르게 살면 다른 데 가서도 잘 될 수 있다고 본다."
그가 인용한 말이 정말 손자병법에 나오는지는 확실치 않다. 하지만 비슷한 말은 있다. 모사재인 성사재천 (謀事在人 成事在天). 일을 꾸미는 것은 사람이나 이루는 건 하늘에 달려있다는 뜻으로, 삼국지의 주인공 중 한 사람인 제갈량이 한 말이다.
자신이 준비해둔 불구덩이에 빠진 사마의가, 때마침 내린 비 덕분에 탈출하는 광경을 보며 읊은 말이라 한다. 나는 D의 말에서 제갈량의 그것과 비슷한 정서를 느꼈다. 거대한 세상의 흐름 앞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한정되어 있으니, 그 점은 어쩔 수 없다고. 조금 숙연해진 나에게 그는 맨 앞에 말한 그 말을 들려주며 인터뷰를 마쳤다. "유명해지지 않고 훌륭한 사람이 되고 싶어요. 골퍼 최경주가 한 말이라는데,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댓글
공유하기
술집 세 개를 운영하는 젊은 자영업자의 이야기
기사를 스크랩했습니다.
스크랩 페이지로 이동 하시겠습니까?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