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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리, 몽파르나스, 부르델 미술관 가는 길 ⓒ 김윤주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잠시 머물다 떠날 여행객 주제에 파리지앵 흉내를 내겠다고 설친 것이 문제였을까. 품위 없게시리 그깟 공짜 입장료에 현혹된 것이 문제였을까. 스마트폰을 시계처럼 사용해 온 구식 습관이 문제였을까.
그래도 그렇지 그 이름도 찬란한 파리인데, 가장자리가 너덜너덜해진 종이 지도를 들고 이 골목 저 골목을 느리게 거닐어야 제 맛이지, 이 고풍스런 도시에까지 와서 평소에도 그닥 좋아하지 않는 앱을 냉큼 열어 빨간색 화살표나 따라가고 그럴 순 없지 않겠는가.
파리의 작은 미술관들은 역사 깊은 고택들 사이나 커다란 나무들 틈에 숨어 있어 찾기 어려울 수 있다는 글을 호주 사람이 썼다는 여행기에서 얼핏 본 것 같기는 하다. 도대체 이 작은 미술관은 얼마나 작길래 이리도 꽁꽁 숨어 버린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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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리, 몽파르나스, 부르델 미술관 가는 길 ⓒ 김윤주
몽파르나스 타워 근처 잡화점 앞에서 영화배우처럼 생긴 청년을 붙들었다. 부르델 미술관을 물으니 잘 모르는 눈치다. 지도까지 들이밀며 물었지만 "그러니까, 우리가 지금 여기에 서 있는 건데..." 하며 딱 내가 알고 있는 만큼만 계속 이야기해댄다. 다시 보니 동네 미술관이랑은 별로 안 친하게 생겼다.
그래도 파리지앵인데 이방인을 돕는다는 자존심은 지켜줘야 할 것 같아서 급한 대로 몽파르나스 묘지를 물으니 거긴 잘 안단다. 이 길로 쭉 걸어가면 된다고 흡족한 표정으로 자신 있게 알려준다. 성공했다.
"너 말고 다른 이에게 물어도 여긴 다 알려 줄까?"
"응, 그곳은 누구라도 다 가르쳐 줄 거야. 아주 유명한 곳이거든."
확인을 받아 두었다. 어차피 다른 날 갈 계획이니까. 갈색 눈이 맑은 파리지앵 청년의 자존심을 지켜주는 일은 성공했는데 내 과업은 이루지 못했다. 어디로 가야 한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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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리, 몽파르나스, 부르델 미술관 ⓒ 김윤주
한참을 헤매다 보니 이번엔 초등학교가 나타났다. 길모퉁이에서 초록색 유니폼을 입고 깃발 들고 서 있는 여자를 발견하곤 반가운 마음에 달려가 물었다. 기대했던 대로 잘 알려 준다. 엄마들은 아이들 때문에라도 동네 미술관이랑 친하다. 아무렴. 게다가 공짜인데.
건널목 맞은편에는 예쁜 카페가 있고, 카페 앞 테라스에는 싱그러운 청춘들이 에스프레소를 사이에 두고 앉아 서로를 응시하고 있는데, 이쪽 신호등 아래에는 아이들 하교 길 교통 안내를 위해 하염없이 깃발 들고 서 있는 여자가 있다.
예술의 도시, 낭만의 도시, 자유의 도시, 혁명의 도시 파리일지라도 아줌마들의 일상은 다르지 않은가 보다. 어쩜 유니폼이며 깃발까지 우리나라 초등학교 앞 녹색어머니회의 그것과 색깔도 모양새도 그리 똑 닮았는지.
파리지엔느 녹색어머니회 엄마 덕에 마침내 찾았다. 부르델 미술관(Musée Bourdelle). 앙투안 부르델 거리(Rue Antoine Bourdelle) 16번지. 6층짜리 하얀색 건물들이 촘촘히 늘어선 골목길에 아담한 작은 정원, 그 안에 2층짜리 빨간 벽돌 미술관이 참하게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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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리, 몽파르나스, 부르델 미술관 ⓒ 김윤주
조각가 에밀 앙투안 부르델(Emile Antoine Bourdelle 1861∼1929)은 프랑스 남부 소도시 몽토방에서 태어났다. 열세 살에 학교를 그만둔 뒤 가구 제조공인 아버지의 밑에서 목공일을 돕는다. 툴루즈 미술학교를 거쳐 스물넷에 에꼴 데 보자르(École des Beax-Arts)에 장학생으로 입학하지만 1년 뒤 그만두고 독학으로 조각을 공부한다.
당대 최고의 조각가였던 로댕의 눈에 띄어 그의 문하로 들어간 것이 서른두 살, 이후 마흔일곱에 그의 작업실을 나오기까지 15년을 로댕의 조수 겸 수제자로 작업을 하며 후대에 유명해지는 많은 조각가들의 스승으로도 이름을 알리게 된다.
그가 1885년부터 1929년까지 아틀리에로 사용했던 주택을 미술관으로 만든 곳이 이 부르델 미술관이다. 미술관의 공간은 크게 앞뜰과 뒤뜰로 구획된 정원, 대형 전시실과 아틀리에를 포함한 1층과 2층, 별관의 1층과 지하, 그리고 이들을 이어주는 복도 정도로 나누어 살펴볼 수 있다.
앞뜰에는 주로 대형 청동상이, 뒤뜰에는 청동 부조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고, 1층 전시실에는 석고 원형들, 2층에는 청동 흉상들이 가득 채워져 있다. 1888년 첫 작품을 시작으로 수십 년간 꾸준히 작업한 베토벤 연작 시리즈는 별관에 전시되어 있다. 그가 이토록 베토벤에 집착한 것은 천재 예술가의 광기와 고독에 공감한 까닭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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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리, 몽파르나스, 부르델 미술관 ⓒ 김윤주
스승인 로댕이 주관적 인상에 충실한 인간의 감정 표현에 집중했다면 부르델은 오히려 그보다 고전적이다. 고대 신화나 현실의 영웅 등 주로 남성을 대상으로 한 그의 작품들은 매우 웅장하고 역동적이며, 질감 또한 거칠고 투박하다.
오르세 미술관에서도 만날 수 있는 그 유명한 <활을 쏘는 헤라클레스>는 당장이라도 활을 쏘아 날려 버릴 것처럼 근육이 살아 있고, <죽어가는 켄타우로스>는 비극이 절절히 전해져 자세히 들여다보기조차 힘들다.
거대한 기마상 <알베아르 장군 기념상>과 이를 둘러싼 <승리> <힘> <자유> <웅변>의 여신상들도 눈에 띈다. 곱게 흐르는 여인의 선과 면이 인상적인 <열매>는 부르델 작품에서 좀처럼 찾기 어려운 분위기이다.
호메로스의 서사시 '오디세이'에서 영감을 얻었다는 <페넬로페> 앞에선 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결혼 후 1년 만에 전장에 나간 남편을 20년이나 기다린 여인 페넬로페, 온갖 시련을 이겨내고 돌아와 극적 재회를 이루는 남편 오디세우스. 갸우뚱 턱을 받친 채 다리를 삐딱하게 내밀고 선 풍만한 이 여인이 어쩐지 우리가 모르는 이야기를 들려 줄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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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리, 몽파르나스, 부르델 미술관, <페넬로페> ⓒ 김윤주
생애 마지막까지 사용했던 가구와 소품, 집기류 등을 그대로 보존해 둔 아틀리에도 인상적이다. 찰흙 반죽을 하던 낡은 작업대와 의자, 크고 작은 작업 도구와 이젤 등이 옛 모습 그대로 남아 있다. 매일 오전 4시면 어김없이 일어나 작업을 했다는 부르델. 고된 창작의 공간을 엿보며 고뇌와 열정이 가득했을 고독한 새벽 시간을 상상해 본다.
아담한 정원에 앉아 있으니 세상이 참 고요하다. 유모차 끌고 나온 엄마와 아이, 폴짝거리며 조각상 사이를 헤매는 동네 꼬마들, 바닥에 쭈그리고 앉아 조각상을 뚫어지게 바라보며 모사 작업 중인 한껏 진지한 예비 예술가들은 작품보다 더 오래 눈길이 머무는 장면들이다. 그네들의 평안함이 나를 정화시킨다.
길 건너 오래된 아파트가 보인다. 저기 방 한 칸 빌려 1년쯤 살아보면 어떨까. 게으른 휴일 아침이면 진한 커피 한 잔을 내려 담고 햇살 가득한 베란다에 나와 앉아 19세기 조각상들을 무심히 바라보곤 하겠지. 그런 날이 인생에 한 번 쯤 있어 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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